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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Dec 18. 2024

어른은 짬뽕을 먹으니까, 짜장면을 먹는 전 아이일까요

마성의 매력, 끊을 수 없는 짜장면

모두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저만 해도 졸업식에 할머니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사실 제가 어릴 때는 식당이 아닌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게 더 흔했던 것 같아요. 아마 가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짜장면 한그릇이 3000원 정도였거든요. 요즘처럼 배달비도 없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왠지 짜장면을 주문할 때는 저와 동생만 전화를 했었어요. 아마 우리 시절의 어린이들은 중국집 전화로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네요. 전화번호부나 전단지 혹은 냉장고에 붙어있는 쿠폰을 뒤적여 짜장면을 주문하면, 철가방을 든 아저씨가 철컥철컥 짜장면과 단무지를 내려주셨어요. 배달 온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그릇을 씻어 집 앞에 두면 어느샌가 그릇이 없어졌고요. 아저씨가 언제 오시나 궁금해서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했는데 항상 안 볼 때 가져가셔서 신기해하기도 했었죠.



아빠랑 단둘이 중국음식점을 갈 때도 많았어요. 아빠가 뽑은 동네 최고의 맛집을 주로 갔는데요. 제가 처음 간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운영중이니 정말 맛집인 것 같아요. 그곳은 언제 가도 사람이 많았고,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저의 짜장면과 아빠의 짬뽕을 시켰죠. 어릴 때 제가 이해가 안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어른들은 왜 다들 짬뽕을 먹는가'였어요. 너무 궁금해서 아빠에게 물었더니 아빠는 "아들도 어른이 되면 짬뽕 먹을걸?"이라며 너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었어요. 그때는 갸우뚱하고 넘어갔는데요. 저는 다 큰 지금도 여전히 짜장면을 먹어요. 짜장소스 특유의 달콤한 감칠맛이 저한테는 짬뽕보다 훨씬 맛있거든요.




그러고보니 치앙마이 여행가서도 짜장면을 먹었네요 :)



짜장면을 정말 좋아했지만, 사실 저는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은 적은 없어요. 짜장면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겨우 면만 먹고 건더기는 거의 남길 때가 많았죠. 그 날도 짜장면을 반 정도 남기고 가족들이 다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근데 제 뒤로 아저씨 두 분이 보였는데요. 그분들은 정말 전투적으로 짜장면을 드시고 계셨어요. 그때 속으로 '저 아저씨들은 어른인데 짜장면을 먹네?' 생각했어요. 더 놀라웠던 건 그 다음이에요.



"여기 밥 두 공기 가득 주세요!" 



아저씨들이 갑자기 공기밥을 추가하시더라고요? 저는 깜짝 놀랐죠. 짜장면은 다 드신 것 같은데, 왜 공기밥을 시키시지? 호기심에 한참을 지켜봤는데요. 아저씨들은 남은 짜장 소스에 공기밥을 통째로 비벼서 드시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양념도 별로 없고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이 보일 정도였는데, 아저씨들은 너무너무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세상에, 마음 같아서는 제 앞에 남은 짜장소스를 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고요. 그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어요. 



세상에는 짜장면을 다 먹고, 밥을 비벼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난 짜장면만 먹으면 이렇게 속이 더부룩한데...








그러고보면 중국음식은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부모님도 가끔 사주시면서도 "짜장면은 몸에 안 좋아"라고 자주 말씀하셨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였을까요, 다 커서도 짜장면을 먹으면 괜히 속이 더부룩했던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닐 때 가끔 동료들과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을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혹시나 싶어 짬뽕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속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저는 속으로 '역시 중국음식은 안 좋구나' 생각했는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저는 그때 이미 크론병이 진행 중이었는데, 몰랐던 것이었죠



한 번은 그런 생각도 했어요. '내가 만들면 괜찮을까?' 자꾸만 아픈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되니까, 괜히 중국음식의 조리과정에 대한 의심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요. 제가 양을 적게 만들어서 그런지 제가 만든 짜장면을 먹었을 때는 속이 꽤 괜찮았어요. 물론 다시 만들어 먹을 정도로 조리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요.



제가 만든건 간짜장이었는데요. 아, 짜장과 간짜장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짜장은 미리 만든 양념에 전분물을 풀어서 걸죽하게 만든 소스이고요. 간짜장은 주문이 들어오면 재료를 바로 볶고, 짜장 양념을 섞은 뒤, 전분물 없이 바로 손님에게 내주는 음식이에요. 



이후 크론병을 진단받고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마다 생각했어요. 전분이 내 몸에 안 좋나? 근데 그러면 탕수육은? 양장피는? 또 다른 음식들은? 시도해볼까? 아니 그랬다가 아프면 어떡하지? 생각은 빙빙 돌았고, 결국 답은 찾지 못한 채 짜장면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크론병 환자로 산다는 건, 맛있는 음식 하나를 즐기는 것도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하는구나 생각하던 시기에요. 그냥 먹는 걸 포기하면 좋지만.. 그러기에는 좋아하는 음식이 너무나 많고, 특히 짜장면은 너무 맛있는 걸요. 그러니까 짜장면을 먹고도 아프지 않았으면 싶어서 고민을 한 거죠. 물론 답은 찾지 못했기에, 꽤 건강해졌다고 느낀 뒤에도 중국 음식은 한동안 피했지만요








그렇게 20대가 저물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와 병원도 함께 다니고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한 덕분인지, 저는 다양한 음식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중국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일반 짜장면이 아닌 간짜장을 먹는 걸 선호했죠. 혹시나 전분물이 안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집 근처에서 괜찮아 보이는 중국 음식점을 새로 발견했어요. 저희 부부는 맛집 찾기에 진심이라서 처음 본 곳은 점찍어뒀다가 외식하는 날 가곤 하거든요. 제 눈에 [탕수육 + 짜장2]세트가 보였어요. 아내에게 세트로 먹자고 말했죠. 아내가 말하더라고요. "나는 짬뽕이 좋은데, 짬뽕 세트로 먹자" 그래서 저는 [탕수육 + 짜장 + 짬뽕] 세트에서 짜장만 간짜장으로 바꿔 먹기로 마음 먹었어요. 아내한테도 말했죠. "나는 간짜장으로 바꿔서 시킬래. 간짜장은 속이 안 불편한 것 같더라고" 그리고 주문을 하는데, 사장님이 간짜장으로는 변경이 불가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약간 불안했지만 그냥 짜장면을 시켰어요. 좀 걱정이 됐죠.



와, 근데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더라고요. 달콤함, 고소함, 풍부한 감칠맛, 그리고 입안을 감도는 기름기까지. 게다가 탕수육과의 조화는 또 얼마나 훌륭한가요. 모든 게 맛있었죠. 그렇게 먹다보니 어느새 저는 짜장면은 물론 양념까지 다 먹고 있더라고요. 그릇을 싹싹 긁어 먹고도 부족해서 밥을 한 공기 먹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어린 시절 봤던 아저씨들의 모습은 연륜이었던 거죠. 가장 신기했던 건 속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했죠. '아, 이제 나도 남들이 먹는 양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소화기 건강이 좋아졌구나. 다행이다'



이제는 짜장면을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아요. 간만에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면 오히려 "아~ 잘 먹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뜻하게 밖을 나서니까요. 어쩌면 중국 음식이 몸에 안 좋은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제 장 건강이 좋지 않았나봐요.



그리고 제 앞에 앉아 열심히 짬뽕을 먹는 아내를 봤어요. 아빠가 말씀하시길, 어른이 되면 짬뽕을 먹는다고 했는데... 역시 우리집 어른은 우리 아내구나! 나는 짜장면을 먹으니 우리 집에서 영원히 아기겠구나. 평생 아내 옆에 붙어서 살아야겠다. 다짐했죠. 아, 그리고 집 근처 중국집의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은 6000원이었어요. 어릴 때 처음 먹던 짜장면 가격보다 딱 두 배 비싸졌을 때, 저는 건강하게 그리고 맛있게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게 되었네요. 어릴 때보다 두 배 건강해진 거겠죠?





▶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기적' 브런치북에는 크론병 환자로서 가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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