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단편] 0.1%와 99.9%의 삶
2022월 8월 20일
[오늘의 단상단편] 0.1%와 99.9%의 삶
뤼미에르 형제의 타임 랩스 필름처럼,
며칠 혹은 몇 년에 걸친 간헐적 삶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영화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뤼미에르 형제.
‘영화의 탄생’은 프랑스 파리 그랑카페의 지하 인디안 살롱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10여 편의 활동사진을 최초로 상영하면서이다.
* *
이제막 세상을 알기 시작한 10대 혹은 20대 시절이나
소위 말하는 리즈 시절.
타임랩스 영상 속에 담긴 그런 삶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인생의 인과가 분명해 보였다.
그럴듯해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냈다 할지라도,
그게 일생 총량 중 얼마나 될까?
길게는 100년에 걸친 시간 중에 몇 퍼센트나 될까?
고작 0.1퍼센트나 될까?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99.9퍼센트 속의 ‘우리’는 누구일까? 어디로 갔을까?
게다가 그 0.1퍼센트의 삶조차 촬영자의 의도로 편집된 타임 랩스일 뿐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제거해보고자,
타인의 그림자에서 명확함과 명백함을 찾는다.
완벽한 정체성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신’이 아닌가?
삶이 명백했던 적이 있던가?
나는 그런 나를 알지 못한다.
명백은커녕 상황에 휩쓸려 그때그때를 모면했을 뿐이다.
빌빌거리고 우물쭈물하며 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세상에 도움이 되긴커녕 숨 쉬는 것 자체가 민폐라서 스스로를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견디던 시간들. .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비루해서 도저히 꺼내 보일 수 없다.
나만 그러했을까...
99.9%의 이런 시간을 견뎠을 뿐이다.
대부분 이런 시간을 견디는 것이 삶이다.
아무도 깊은 우물 속에 잠겨 있는 나를 알지 못한다.
타인의 0.1%를 보며 희망하는 자에게 희망은 없다.
타인의 삶으로 대리 만족하며,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으로 인생을 허비할 뿐이다.
내 인생의 유일한 목격자는 나다.
나밖에 없다.
자기 인생의 유일한 목격자는 자신 뿐이다.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99.9%의 비참함을 목격하는 자라야 한다.
그것이 0.1%의 삶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