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시>
차례를 마치고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차려입은 행색은 예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부모의 손을 잡고 웃어른들에게 향하는 발걸음은 경쾌하기만 했다.
그런 모습 어디에도 온 나라를 뒤덮은 망조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디에 그토록 깊은 슬픔이 내려앉은 것인지, 지속되는 삶 속에서는 작금의 불운이 꿈같기만 했다.
선산에 차례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러 어르신 댁에 들렸다.
언제나 그렇듯 다과상으로 내온 것이 아침상과 다를 바 없이 풍요로웠다.
어르신은 얼마 전 연회에서 받았다는 시 한 구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림이 곁들여진 시는 근래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어르신께서 시구를 읽어주셨다.
옛 시절의 꿈같이 기억이 나를 휘몰아쳤다.
삼삼오오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드는 어르신들과 마당에서 사방치기, 고무줄놀이에 재잘대는 아이들. 낮은 담 어디에고 웃음소리가 넘치는 장면이었다.
지나온 그 시절이 꿈같기만 했다.
꿈인 듯 꿈이 아닌 그림 속을 나 혼자 거니는 듯했다.
회상의 잠긴 나는 가슴을 울리는 시를 들었으나,
금방 들었던 시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몹시도 서글픈 시라는 감정만이 남았을 뿐이다.
풍요로운 옛 시절이 꿈같게만 하는 작금이다.
이 나라가 감당해야 할지 모를 불운의 그림자에 나는 자꾸만 서글퍼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뉴스를 듣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감정이 북받칠 때가 많다.
세상살이하다 보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보고 듣고 한다.
그러다가 남에게 일어난 불행에 흥분하는 나에게 묻는다.
나 사는 것만으로 바쁘고 힘겨운데 남 사는 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건가?
남들 잘 먹고 못 사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내 인생 책임지려 아등바등 것만으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 아닌가?
제 밥벌이의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할 일하는 것 아닌가?
‘의’니 ‘불의’니 이런 걸 신경 쓰며 살 여유가 어디 있는가?
내 밥벌이가 힘겨워 ‘말세’니 하는 말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사 도무지 불가해해서 어찌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밥벌이에 복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내 일이 아니면 그만!’ 타인의 불운이라 잊어버려야 했다.
세상은 복불복이라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