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짱의 지구별 표류기
방구석에 틀어박혀 종일을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다.
내 알 봐 아니라는 듯 계절과 등을 돌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따라갈 수도 없이 저만치 멀어진 거리감을 느낀다.
낯선 계절과 갑작스러운 만남을 가질 때 시차를 느끼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계절시차!
엄마의 갑작스런 심부름으로 인한 갑작스런 외출이다.
구멍 숭숭한 샌들을 신고 나갔다가 도로 들어와 등산용 양말에 운동화를 갈아 신고 밖으로 나선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팔 티 한 장으로 거뜬했는데 겉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선다.
높아진 하늘과의 거리감에 계절시차를 느끼며 밭으로 향한다.
밭 한가운데 가을걷이로 분주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상품으로 팔아넘기고 남은 작물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냉과 온의 사이를 오가며 얼마 남지 않은 저의 마지막 생명력으로 뽑아 올린 찬란한 색들로 빛나고 있었다.
하다못해 밭 구석에 덩굴만 남아있던 고구마줄기마저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피어내고 있었다. 토실한 알맹이를 넘겨주고도 아직 남은 생을 끝내지 못하고 푸르른 생명을 품기를 다시 소망한 것이다. 그 소망이 다음 계절로 이어지지 못할 것임을 알 것이다. 생명이 생명의 순리를 모를 리 없다.
하얀 이불이 곧 내릴 계절이 왔음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마지막 푸르름을 거세게 피어내는 것은 생명이 생명에 다가가고자 하는 몸짓이다.
“아빠, 서리 언제 와?”
밭 저편에서 마지막 가을걷이에 박차를 가하는 아빠를 부른다.
“며칠 안에 오겠지!”
“서리 와도 고구마 줄거리 괜찮아?”
“한 번에 곤죽이 되지.”
어쩐다…
하는 수 없이 푸르른 것들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 애처로운 수고가 고마워서라도 실한 녀석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래서 갑작스러운 외출은 난데없는 고구마 줄거리 채취로 이어진다.
튼실한 녀석들의 몸을 한 줄 두 줄 따 모으며 콧노래를 부른다. 아마 며칠간은 계절시차에 적응한 시간을 녀석들과 보낼 것 같다. 덕분에!
힘겨운 계절을 위해 도토리를 저장하는 다람쥐마냥,
고구마 줄거리를 모아둔다. 새로 장만한 저온 저장고 덕에 서리가 지나고 하얀 이불로 세상이 덮이는 계절에도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생을 다해 피어준 녀석들을
따뜻한 방에 앉아 눈 소복한 날 맛나게 먹어야겠다.
소복한 계절에서 잠깨고 나와
다음 계절시차를 느낄 무렵에는
또 어떤 마음으로 다른 생과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