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에 시작을 알리는 계절의 첫 비가 쏟아졌다. 예고에 없던 방문을 알리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놀라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뭇한 하늘에서는 구멍이라도 난 듯이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는 시간의 무게만큼의 비걷이 거리가 쌓여 있다. 뛰어나가 먼저 보인 처마 밑에 대롱거리는 것들부터 젖지 않도록 끌어들였다. 종자 씨가 들어 있는 즐비한 봉지들도 꽁꽁 싸매놓는다. 한 계절이 훌쩍 넘도록 같은 자리에 있었건만,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의 마당 여기 저기며 창고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방문자로 인해 잊혀졌던 것들이 이때다 하고 나도 저도 여기있었다고 존재를 드러내기 바빴다.
가족들 모두가 자리를 비운 때에 혼자 우왕좌왕 비걷이를 해대는 통에 등에서는 때 아닌 땀줄기가 흘렀다. 딱딱 정돈되고 깔끔한 도시의 집들이 부러워졌다. 넓기만 넓지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집에는, 뭔 놈의 치울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외출한 식구들을 향해 궁시렁거림만 한 바가지씩 쏟아졌다.
약해지는 빗줄기에 겨우 처마 밑에 주저앉아 비걷이로 끌어 모은 것들을 뒤적거려 본다. 뭐가 그리고 소중해서 꽁꽁도 싸매두었었는지 기억에도 없는 것들이 한 가득이다. 개 중 검은 봉다리는 서리 끝물에 한 알 한 알 딴 서리태며 울타리 콩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필요한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런 때에야 나타나는구나.’
밥 해먹으려고 온 집을 뒤질 때는 그렇게도 보이지 않더니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어긋나야만 보여 오는 것들이 있나 보다 싶어졌다. 한숨을 돌리며 올려다보는 하늘가에 오롯이 서 있는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린 듯 나무 가지에 털고치를 트고 나온 하얀 몽우리들이 듬성히 매달고 있는 목련 나무였다. 생활의 북새통에 맞춰진 시선이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가닿은 것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집 입구의 덩그런한 나무를 쳐다볼 일은 특히 더 없었다.
하늘 끝에 닿을 듯 뻗은 목련나무에 생명의 몽우리를 틔운 것은 이미 꽤 전인 듯싶었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 목련 꽃보다 푸른 잎이 이미 무성해져 있었다.
'저게 몽돌이인가... 언제 저렇게 자랐지?!'
하늘 한 켠을 가릴 정도로 자란 목련 나무가 난데없이 세월의 마디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새삼 신기한 기분에 젖으며 잊고 있던 시간 속의 몽우리를 벌려본다.
어느 해였던가, 자원봉사를 나섰던 엄마가 목련 나무 두 그루를 얻어왔다. 기왕 얻어 오긴 했으니 어딘가 심기는 심어야 할 텐데, 시골집은 아무리 마당이 넓어도 꽃나무를 심을 마땅한 터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한 곳에 심기지 못하고 하나는 집 입구에 또 하나는 장독대 옆 담 자락 터에 자리를 잡았다. 장독대 옆이라 식구들과 자주 인사를 하는 나무에게 '몽순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왕 집 안에 들인 생명이니 뿌리를 내리고 몇 년 후에는 새하얀 꽃망울을 듬뿍 피워 달라는 기대를 담은 이름이었다. 매일같이 조금씩 푸르러 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또 한 그루는 몽순이의 돌림으로 '몽돌이'라 이름 지었다. 우리 식구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부터 있던 집 입구 푸세식 화장실 옆에 그나마 공터가 있어 거기에 심겨졌다.
식구들 모두는 문만 열면 새하얀 인사를 보내는 몽순이를 좋아했다. 집과 담벼락 사이에 자리를 잡은 몽순이라 가지를 쑥쑥 키우지는 못했다. 겨우 담벼락을 넘기고서 가지 마디마디에 몽우리를 틔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몽우리를 틔우기 시작하더니 해마다 때만 되면 새하얀 꽃 몽우리들을 피워냈다. 제 덩치에 붙이지도 않는지! 소담한 꽃송이들로 계절을 물들여 주는 몽순이를 보는 식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다 문득 마당 너머 집 입구의 몽돌이를 보면, 쯧! 자동으로 혓바닥이 차였다. 볕 좋은 터에서 키만 웃자라서는 꽃몽우리도 군데군데 설렁설렁 피워냈던 것이다. 가지에 설렁한 몽우리마저도 활짝 펴기도 전에 푸른 이파리에 떨궈지는 것이었다.
소담한 꽃들을 한껏 선사하는 몽순이와의 계절맞이는 그리 길지 못했다. 세월만큼 커진 자식들 덩치에, 복닥거리는 시골집을 넓히는 공사를 결정한 것이다. 담벼락까지 집을 바짝 넓히는 공사에 몽순이가 자리 잡은 터도 들어갔다. 몽순이는 톱질 몇 번에 잘려나갔다. 웃자라지도 못한 가지며 몸통은 공사용 버팀목으로조차 쓰이지도 못했다. 공사 내내 인부들의 발길에 채이다가 어딘가로 흩어져 버렸다. 공사가 끝날 무렵, 우리는 몽순이가 서 있던 터가 어디였는지조차 잊어 버렸다. 멀찍이 떨어져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일 없던 몽돌이도 몽순이처럼 잊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고 어느 해인가, 오늘처럼 거뭇한 하늘에서 구멍이 난 듯 물을 쏟아내던 날이었다. 밖에서 우지근하는 소리가 울렸다. 집 입구 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놀라 내다본 식구들의 눈에 걸린 범인은 몽돌이였다. 집 공사로 우리 집에도 염원하던 수세식 화장실을 들였다. 그래서 이제 아무도 사용하는 일이 없게 된 집 입구의 푸세식 화장실. 그 화장실을 웃자란 몽동이의 뿌리가 뚫고 들어가 벽까지 쪼갠 것이었다.
화장실 옆의 녀석은 우리가 알던 몽돌이가 아니었다. 저도 의도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푸세식 화장실로 뿌리를 내린 녀석은 쌓여있던 인분의 양분을 죄다 빨아먹고는 굵어진 뿌리를 주체 못하고 벽까지 뚫고 나온 것이었다. 그 굵은 몸통이며 울뚝한 뿌리를 보자니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헐레벌떡 뛰어온 집 입구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만들어준 그림자의 정체가... 바람 시원찮은 날에도 웃자란 가지를 흔들어 땀을 식혀주던 것도 너였구나!'
웃자라서 푸세식 화장실을 한참을 넘겨 있던 녀석을, 식구들은 그 몽돌이라 여기지 않고 지냈던 거였다. 잊혀있던 몽돌이는 요란스럽게 제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온 것이었다.
“엄마, 목련 나무가 저렇게도 클 수가 있어?”
"낸들 아냐, 터를…잘 잡은 게지."
엄마의 말처럼, 터를 잘못 만난 몽순이는 웃자라보지도 못하고 다른 생명으로 사라져간 것이고, 터를 잘 만난 몽돌이는 쑥쑥 웃자라서 순환의 시간 속에 뿌리를 내린 것일까? 대들보만큼이나 굵어진 몽돌이의 몸통을 보는 식구들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흘렀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몽순이처럼 소담한 꽃을 가득 피워내는 재주가 없는 몽돌이다. 할 줄 아는 일이란 빨아올린 영양분으로 듬성듬성한 몽우리를 일찍도 틔우는 일이다. 그 듬성한 꽃도 꽃이라고 피워두고서, 잠시나마 눈길이 머물기를 그리워하고 서 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듬성한 꽃마저 금방 털어내고 푸른 싹을 쑥쑥 틔어 올린다. 볕 따가운 날을 얼른 대비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몽돌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아는 녀석인 것이다. 그런 녀석이라도 올해도 홀로 푸세식 옆 화장실에서 덩그러니 서서 마당 넓은 우리 집에 그늘을 드리울 것이 분명하다.
인위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몽돌이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