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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Sep 15. 2024

경로를 벗어나지 말 것

Stick to the plan

9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더위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아직도 열대야로 잠을 설친다. 시원했던 아침 공기는 금방 데워져서, 초여름부터 본격적인 장거리 훈련을 시작한 나에게 특히나 고달프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와도 곧 해가 뜨면 금방 더위를 먹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 준비해야 한다. 특히 오늘 아침은 뛰기가 싫었다. 어제 마음을 굳게 먹고 잠들었는데,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잠은 깼지만 눈을 감고 핑곗거리를 생각해 본다. 그럴듯한 핑계도 미래의 내가 느낄 죄책감을 대신하지 못한다.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어쨌든 나가서 훈련을 소화하였다, 훈련량을 113% 초과 달성하였다.


요즘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이 있다, “Stick to the plan, 계획을 벗어나지 말 것”.


계획한 일정에 맞춰 훈련량을 쌓아가다 보면 어떤 날은 선약들 때문에 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불가피하게 하루 미룰 때도 있지만 때론 단순히 기분이 내키지 않는 날이다. 사실 이 기분이란 게 한 번 후 하고 불면 날아갈 만큼 가벼운 것인데, 이 기분이 우리의 계획 실행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글은 내가 세운 계획의 끝까지 도달하려는 마음가짐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자기 훈련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과를 논하기 전에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성취라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계획을 고수한다는 것에는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 목표를 세상에 선언했다고 할지라도, 복잡계로 이루어진 세상의 물결이 갑자기 내가 수영하기 편한 물살로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흐름을 역행할 상황들을 마주하겠다는 각오이다. 때론 거슬러 오르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계속 관찰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에 힘을 모으되, 덜 중요한 일들은 유연하게 조정하는 용기 있는 임기응변. 쉽게 말해 편하게 살지 않겠다는 자세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생각-행동 회로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목적이 없는 계획은 없다. 목표 의식이 생긴 다음에 계획의 필요성이 생긴다. 뇌에 얻고 싶은 것을 무언가를 입력하면 아주 빠르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준다고 한다. 목적 프롬프트(prompt)를 입력하면 가장 좋은 how를 출력해 주는 최고의 AI 코파일럿이다. 근데 문제는 우리의 뇌가 제시한 how(계획)를 우리 스스로가 속이려든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많아서, 포화된 시장이라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등 다양한 실질 이유를 들어 우리의 뇌가 제시한 BEST how를 챌린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 과정도 학습한다. 이러 행동이 반복되면 목표를 세웠고 뇌가 좋은 계획을 안내했음에도, 우리 뇌는 아 얘가 조금 하다가 계획을 폐기할 것이다, 혹은 계획을 자주 수정하겠구나 하고 예측할 것이다. 계획의 완성은 실행인데, 이 완성-실행 알고리즘이 약해지면 점점 실행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큼 계획을 지키는 일 자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힘들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뇌를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나에게 더 친절할 것. 친절하다는 것은 필요할 때 있어주는 것이다. 지금 약속을 지킴으로써 미래의 죄책감, 책임감을 덜어주는 친절함이다.


마지막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분기 초에 다 같이 모여 세웠던 타임라인이 마감일에 가까워질수록 수정이 잦아지는 것을 목격한다.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처음 계획이 어설펐거나, 설정한 목표에 비해 계획 수준이 낮거나, 회사 밖 상황이 변했거나. 하지만 나는 리더십에서 계획을 충실하게 끌고 갈 의지가 작았던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든지 입맛대로 수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아래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일을 추진할 때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후진 의사 결정 문화를 만든다.


그에 반해 어떻게든 주간 계획을 지키려는 조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처음 계획했던 목표와 가장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것이고, 그렇게 적응해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거나 아니면 손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A라고 해서 A에 맞춰 일을 추진하던 협력사들에게 ‘A가 B로 변경되었고, 상황상 C로 변경될 수도 있다’ 고 고지한다면, 누가 이 회사와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도모하려 하겠는가.


글을 마무리한다. 계획-실행 메커니즘은 나의 무의식과 관여돼있다. 계획대로 하겠다는 각오. 혹시나, 달리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데도 계속 달리라는 말이 아니다. 잠시 멈춰서 스트레칭도 하고 조금 걷다가 다시 뛸 수도 있다. 내가 완주를 계획한 이 코스를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19세기 독일 프러시아의 작전 참모였던 Helmuth von Moltke the Elder도 이렇게 말했다, “적을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계획 따윈 없어진다(No Plan Survives First Contact With the Enemy)”.


이 어록들을 보고 역시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오히려 스포츠 경기와 전쟁통에서 저런 유명한 어록이 나오게 된 이유를 나와 같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이 전쟁 같은 세상에 우린 매일 링 위에 오른다. 종이 울릴 때까지 정신없이 싸운다. 어떤 라운드에서는 상대의 몸에 더 많은 펀치를 꽂아 넣고, 어떤 라운드에서는 간신히 서서 버틴다. 그게 인생이지 않을까! 상대를 KO 시키거나 판정승을 얻을 때까지 계속 링에 올라 코치의 가이드(계획)에 충실하는 것.


누가 그런다, 계획대로 하면 뻔한 결과가 나올 뿐이라고. 그건 남들이 다 하는 계획을 그대로 따라 했을 때다. 내 계획은 절대 뻔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내 계획과 실행 방법은 유일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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