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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lancerKorea Nov 25. 2019

프리랜서 통역계의 '어벤져스'

[라라 프리랜서] 조주연 국제회의 통역사 인터뷰

'통역이면 통역, MC면 MC'
국제회의 內 이유 있는 존재감

조주연 국제회의 통역사 인터뷰







“안녕하세요, 조주연 통역사입니다.”
   
핑크골드빛 테를 두른 빳빳한 고급 재질의 명함과 함께 건네받은 인사. 명함에는 ‘한-영 국제회의통역사 / 영어MC’라는 직함과 전화번호, 그리고 이메일이 쓰여있었다.

그동안 프리랜서코리아는 프리랜서 분들에게 꼭 명함을 만드시라는 말을 당부해 왔었다. 명함을 통해 그 사람의 프로페셔널함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무엇보다 치열한 프리랜서 경쟁 속에서 명함은 지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프리랜서의 명함을 보고 은연중 그 사람을 더욱 오래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 ‘라라 프리랜서’ 인터뷰를 진행해 오면서, 마케터 본인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준 프리랜서는 처음이었다. ‘아, 오늘 뭔가 다르다-’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스쳤다. 처음부터 특별했던 조주연 통역사와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통역사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 4년 정도 직장 경험을 했다. 그런데 마케팅 직무에 있다 보니 어느 회사를 가던 ‘영어 잘하는 애’로 통하게 되더라. 영어프레젠테이션이나 번역 등의 역할이 계속 주어져서, 이럴 거면 영어와 관련된 업무를 전문적으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둔 뒤 통번역 대학원에 진학했고, 자연스럽게 통역사의 길을 걷게 됐다.

통역사는 공인회계사 같은 자격증 시험은 없지만, 통번역 대학원 졸업이 곧 자격증 역할을 한다. 동시통역과 순차통역 등 스킬을 연마할 수 있는 자격을 2년간 길러주는 곳이 대학원이다. 사실 공부를 정말 ‘빡세게’ 한다. 나중에는 공부하는 습관 자체가 몸에 배여서,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어떤 고시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웃음)



통역사는 인 하우스(in-house)와 프리랜서로 나뉜다고 들었다.
프리랜서로서의 셀프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에 방송될 'K뷰티와 설화수 스파' 영상 촬영. 프리랜서이기에 더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인 하우스와 프리랜서라는 선택의 길에 놓인다. 인 하우스 통역사는 영어 수요가 많은 정부부처·기업의 통역실에서 일하거나, 회사에 상주하며 임원 전담통역사로 일한다. 나는 4년이라는 직장경력이 있어 인 하우스로 가긴 애매했던 터라, 대학원 들어가면서부터 프리랜서가 돼야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사실 프리랜서로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클라이언트가 없으면 손가락 빨며 살아야 하고, 다음 달, 아니 당장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대학원 동기들이 대부분 프리로 전향했지만, 처음에는 나랑 동기 한 명만 프리로 시작했다.


그래서 항상 셀프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통역사가 굳이 마케팅을 왜 하냐"는 선배들의 지적도 있었다. 예전 통역사 하면 까만 옷 입고 부스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통역사도 이미지 메이킹이나 각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상을 한 번이라도 더 줘야 그만큼 많은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내가 튀어야 된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순차통역으로 강연자와 함께 무대에 선다면, 적어도 강연자와 같이 대중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통역사가 돼야 하지 않을까? 기본 내용에 충실하되 전달력 있게 통역하기 위해 연기력도 필요하고 언변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마케팅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만 6년 경력의 베테랑 통역사지만,
예전에는 통역하는 순간에 긴장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사실 대학원에서 워낙 단단해진 상태로 졸업을 했기에, 사회에 나와서 했던 통역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항상 대학원 교수님들 앞이 가장 두려웠다. 날카로운 비평과 함께 내 통역이 천하에 가장 낱낱이 해부되는 순간이 바로 교수님 앞이었기 때문이다.

매 수업마다 같은 클래스 사람들 앞에서 ‘발리고’ 교수님한테 지적받다 보면, “나 외국에서 살다 왔어. 영어 좀 해”라며 무작정 도전했던 사람들도 본인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통역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 재학 내내 탈탈 털리고 환골탈태의 수준으로 졸업하게 된다.

통역 시 실수를 했을 때 바로 정정하는 매너 등의 프로토콜도 대학원에서의 트레이닝 과정 중에 모두 배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최대한 당황하지 않게 대처하는 것을 모두 익혔기 때문에, 간이 콩알만 하지 않는 이상 동기들이 통역 시 긴장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애초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국제회의 통역사’ 타이틀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역량이 중요해 보이는데.



유엔 산하 기구가 굉장히 다양하기에 별의별 국제회의도 많다.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기본적인 전문지식은 대학원 재학 중 심화 과정을 거치며 쌓았다. 13주간 매주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했는데, 그 안에는 금융, 재무회계, 국제정치, 역사 등 여러 개의 과목이 있었다. 이를 하나씩 돌아가면서 한 학기 동안 소화했고, 혹 스스로 부족한 과목은 끈질긴 공부를 통해 채웠다.

각 과목에 맞는 전문 용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 한국어도 외워야 했다. 양국 간 역사까지도 공부했다. 심화 과정 때 쌓은 노력의 산물들이 국제회의 통역사로 일하는 요즘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있다.



어떤 국제회의가 기억에 남는가?



전 세계 난민을 보호하는 ‘유엔난민기구(UNHCR)’ 회의가 기억에 남는다. 제3자인 통역사 입장에서 난민의 열악한 환경을 마주하니 너무 감정이입이 됐다. 전 지구적 전쟁의 역사와 함께 심각해져 온 것이 난민 문제이고, 우리나라 역시 전쟁의 아픔을 갖고 있지 않나.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통역이 당연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국제 인도주의 의료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와 함께 일했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미국에서 순차통역으로 진행됐는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보는 것 자체로 그냥 고개가 숙여졌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긴급구호 활동에 뛰어드는 분들을 보며, 세상에는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국경없는의사회 분들께서 타인으로부터의 어떠한 존경심을 바라시고 그런 인도주의 의료 활동을 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본인의 의료적 재능을 아낌없이 나눈다는 생각으로 구호 활동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란 존재가 새삼 작아지는 경험을 했다.



통역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부스 안에서의 모습도 반짝반짝 빛나는 조주연 통역사(좌). 환히 웃는 모습에서 통역일을 사랑하는 그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동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 왔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보람을 느끼고자 통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 교수님으로부터 항상 들었던 말씀이 있다. “네가 칭찬을 듣기 위해 통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이 통역사다.” 즉, 누군가가 통역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잘한 통역이라는 것이다.

통역은 튀어서도 안 되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통역 잘했다고 칭찬을 들으면, 내가 진정으로 잘한 것이 맞는지 다시 뒤돌아본다. 이렇다 보니 내 통역 퍼포먼스 자체에 대한 보람은 생각보다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다.

굳이 보람을 느낀 순간을 꼽자면, '교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해 오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도 그런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대로 묵묵히 앞길만 보고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을 이렇게 받는구나' 하는 보람을 느낀다.



아리랑TV와 EBS, TBS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아리랑TV 'Global Business Report' 메인MC로서 출연했던 모습


아리랑TV에서는 영어MC로 활동했다. 영어로 방송을 하다 보니, 이것과 연계되어 국제회의에서 진행을 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EBS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주로 영어 발음을 교정해주고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 대신 원어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표현을 알려준다.

가장 오래 활동한 TBS에서는 기자로서 영어 리포트를 한다. 처음에는 서울시 행정 뉴스와 관광공사 관련 내용을 보도했었고,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색있는 이야기를 리포트한다. 며칠 전엔 ‘돼지꿈을 꾸는 것이 왜 길몽인지’를 리포트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야기거리도 외국인의 관점에서는 흥미로울 수 있어 재밌게 임하고 있다.



사람 ‘조주연의 라이프’도 궁금하다.
개인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는가?


이토록 매력적인 조주연 통역사의 취미 활동!


스스로 이날은 무조건 쉬어야지 정해두면 그 자체에 갇혀버릴 것 같아서, 사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을 따로 구분해놓지 않는다. 하루 중 일하고 쉬는 것에 대한 시간대 정도만 구분해 두고 시간을 최대한 쪼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원래 남들 다 쉬는 주말에 일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기에, 프리랜서 생활 자체가 나랑 잘 맞는 것도 있다.

쉬는 시간에는 주로 운동과 필요한 공부들, 번역 등을 한다. 아 먹고 싶었던 것도 먹으러 다닌다.(웃음)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쉬는 시간을 쪼개서 이것저것 하는 편이다.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는 질문도 많이 받을 것 같다.
본인만의 팁이 있다면?


어렸을 때 해외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영어공부 방법을 쓰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원래 암기하는 공부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영어선생님이셨다. 엄마가 항상 영어 테이프를 틀어놓고 어린 나를 깨우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나는 비몽사몽 와중에도 테이프를 들으며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거다. 등굣길에도 혼자 중얼중얼 영어로 이야기를 읊었다고 하더라.

요즘에도 이동하는 시간에 새롭게 알게된 어려운 단어나 표현이 익숙해지도록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내 비법 아닌 비법이라면 그 단어를 알게 된 출처나 문구와 함께 반복하는 것이다. 단어 하나만 외워서는 실제 표현에서 그 단어가 바로바로 나오기가 어렵다. 단어를 앞뒤로 어떤 문맥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잡히기 때문이다.



통역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사회자가 대본만 보고있는 모습이 싫어서 최대한 대본을 '고치고, 보완하고, 외운다'는 조주연 통역사. 행사 후 너덜너덜해진 대본이 그녀의 땀방울을 방증해 준다.


사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도 이런 질문을 받기 위함이었다. (조주연 통역사의 인스타 팔로워는 1만 명이 훌쩍 넘는다) 궁금한 것을 선배에게 물어봐도, 워낙 프리 시장이 치열하다 보니 이렇다 할 대답을 잘 듣지 못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밟아왔기에, 혹시라도 ‘프리랜서 통역사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세요’라는 마음으로 인스타를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통역사가 돼서 그런지, 현재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 혹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고 통번역 대학원을 갈 수 있을까요? 제가 나이가 늦지는 않았을까요?”라는 조언을 많이 구하신다.

그럼 나는 역으로 “통역사가 되고 싶으신 게 목표이신 거에요? 아니면 통역 일을 많이 하고 싶으신 게 목표이신 거에요?” 묻는다. 만약 후자라면 나이에 따라서 통역 기회가 제한적일 수 있기에 늦었다고 말씀드릴 때도 있다. 하지만 통역사가 되는 자체가 꿈이라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시장에서 평가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지,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살다 오지 않아서 걱정된다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내 주변 선생님 중 통역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국내파가 많다.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그만큼 국어가 어렵다. 결국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인정받는 직업이 통역사다. 이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코리아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통역사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프코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프리랜서코리아 같은 플랫폼에 늘 갈증이 많았다. 업계 표준화가 안 돼 있어서, 1~2년 차 때는 나중에 알고 보니 에이전시가 40~50% 수수료를 떼 간 경우까지 있더라. 그땐 갑을병정 중에서도 ‘정’이었기에 억울해도 말 못 하고 정말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래도 내가 더 성장하면 괜찮아지겠지, 이 업계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요즘 후배들을 보니 이런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항상 프리랜서 업계를 투명하게 선도해줄 플랫폼 출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프리랜서코리아 덕분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감사하고 프코의 행보를 응원한다.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해 주셔서 ‘중개 수수료 0%’라는 투명한 문화를 퍼트려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 및 본인만의 꿈이 궁금하다.


커뮤니케이션계의 '어벤져스'로 활약할 조주연 통역사의 모습이 기대된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해온 6년 동안 한 해 한 해가 정말 다 달랐다. 나만의 규칙도 세웠고, ‘이런 마인드로 이 일에 임해야겠다’라는 다짐도 일궈냈다. 지금까지는 통역 일을 조금씩 다져왔다면, 앞으로는 ‘조주연’하면 이런 사람. 즉 ‘나만의 브랜딩’으로 업계에 좀 더 알려지고 싶다. 스스로 더 내실을 갖추고 단단해지길 기대한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어벤져스’를 만들고 싶다.(웃음) 방송, MC, 통역 등 다방면의 인재를 모아서, 그때그때 인력이 필요한 기업 행사나 각종 회의에 투입하는 것이다. 기업으로부터 “회사에 계속 묶여있어야 할 인력은 아니지만 이번 프로젝트만을 위해 한 분을 모시고 싶다”, 혹은 “어떠한 케이스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싶다”는 요청이 의외로 많다.

나 또한 보통 프로젝트 단위로 자문해드리는데, 이런 경우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단기성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을 갖춘 컨트롤타워에 대한 니즈가 늘 있었다. 학부에서 경영 전공을 했고 커뮤니케이션 쪽도 계속 공부해 왔으니, 업계의 어벤져스격인 ‘커뮤니케이션 브랜드’를 만들어 활동해보고 싶다.



조주연 통역사의 애장품 공개!

-노트북: 각종 번역물과 통역 자료부터 통장/신분증/여권 정보까지 들어있는 없어서는 안될 애장품 

-펜과 하이라이터: 노트테이킹 및 시나리오의 각종 수정사항을 반영할 펜과,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 줄 하이라이터! 사진 속 하이라이터는 출장지에서 구입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출장 갈때마다 여러개씩 사오고 있음 :D

-한손에 잡히는 노트: 흔히 '순차 노트'라고 부르는, 연사들의 말을 간단하게 적고 통역할 노트

-뱅앤올룹슨 이어폰: 귀가 작은 편이라 딱 맞는걸 찾느라 오래 걸렸다. 동시 부스에서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너무 훌륭해서 해외 출장을 다닐때 기내에서 집중하기 딱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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