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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Mar 29. 2021

성스럽지 못한

면접

 20대 때 언론인을 꿈꿨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무조건 면접을 보러 다녔다. KBS 인터넷 라디오 매거진 콩이라면서 연락이 왔다. 나는 경력이 필요했으므로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면접 장소가 KBS 로비에 있는 카페였다. KBS 기자실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떠올려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분을 확인하고 출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지금 나는 지망생 신분이니 무슨 상황이든 포용력 가득한 해석이 필요했다.


 나는 정장을 입고 KBS 로 갔다, 아니 KBS 로비에 있는 카페로 갔다. 나를 불러낸 그는 현재 KBS 인터넷 라디오 매거진 콩 대표이며 언론에 오래 몸을 담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뜸 내 옷차림을  지적했다. 이래서 그 대학 출신은 안 돼. 그런데... 그가 일단 나가자고 했다. 나는 사무실로 가는 줄 알았다. 그의 차에 별 의심 없이 탔다. 그는 운전을 하는 내내 통화를 했다. 나이가 지긋한 연예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차가 도착한 곳은 곱창을 파는 식당이었다. 나는 신개념 압박 면접인가 보다, 말도 안되는 명분을 자꾸 갖다 댔다. 곧 그의 지인이 도착했다. 누구의 매니저라고 했었는데 기억이... 곱창이 지글거리며 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지인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지인과 사적인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이런 SBR! 그제야 현타가 왔다. 식사하는데 그저 여자가 필요해서 나를 앉혀 놓고 있는 느낌. 내가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자 그가 말했다. "가 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만약 내가 그에게 호의적이었고 못 마시는 술을 계속 받아 마셨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내 탓을 했다. 그에 대해 공론화 따위는 생각도 못했다. 너무 지쳐있는 상태라.


 몇 년 후 언론인과 언론인 지망생 카페에 그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지역 방송국에 꽂아 주겠다면서 접근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당했던 일을 고스란히 제보했다. 당시 그는 KBS xx 센터에 장으로 있었는데 자리에서 내려왔다. 간절한 취준생들을 꽤 오랜 시간 농락한 것치고 허무한 결과였다.


 나는 재작년에 봤던 면접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평생 기억하겠지. 그녀는 내 이력서를 보면서 차례차례 지적했다. "나이가 많아서." 뭐지, 그럼 면접에 부르지를 말던가. "대학원을 나와서 학벌이 그나마."


 그녀는 자신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호텔경영으로 가장 유명한 대학 다녀요. 나는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자식 자랑이야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딸이 스카이라도 다녔으면 사람들을 학벌로 얼마나 재단했을까. 나는 다음 날 그녀에게 문자를 받았다. "같이 일해요. 얼굴이 예쁜 지원자들도 꽤 있었지만..."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서는 안 될 것 같같았다. 그녀에게 나란 이미 나이가 많고 학벌이 안 좋고 안 예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피곤해지기 싫었다.


 나는 KTV 기자 면접도 본 적이 있다. 면접관은 매우 퉁명스럽게 말했다. 국문과를 전공했으면 신문 기자나 할 것이지, 여기는 왜 온 거야. 아무래도 나때문에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면접관은 면접 내내 고개도 들지 않았다. 나한테 그냥 네가 싫어, 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도대체 서류 전형에서 통과는 왜 시킨 것이냐...  차라리 내가 작성한 기사를 보고 부족한 점을 지적했으면 이해했을 텐데. 나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사실 KTV를 잘 안 봅니다만?" 어차피 떨어질 거 막 질러댔다. (나란 인간도 참)


 나는 결국 면접 트라우마가 생기고 말았다. 언젠가 남사친과 면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남사친 왈 "압박 면접은 긴가민가 하는 지원자를  확인하는 방법 같아."


 그래, 좋다, 압박 면접. 압박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사고와 상황 대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데 동의. 하지만 압박 면접이든 덜 압박 면접이든 어떤 면접이든지 면접관도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 지원자들은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함께 일을 하겠다고 찾아와 준 고마운 사람이지!지원자도 면접관과 그 회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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