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그리고 남자'는 2008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이다. 나에게 몇 안 되는 띵작이기도 하다.
엠마는 농장에서 돼지들과 함께 산다. 돼지들과 뒤엉켜서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엠마는 돼지에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선사했다. 그리고 돼지와 종종이야기를 나누며돼지에게 의지했다.
엠마의 특기는 고통 없이 돼지를 죽이는 것이다. 돼지는 격한 저항 한 번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엠마에게 소시지와 햄 등으로 먹힌다. 자신의 마지막을 바치는 것. 엠마는자신이 사랑하는, 시한부 막스 역시 돼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는 엠마가 돼지를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단순한 도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존중과 존중이 담긴 신성한 의식 같다고나 할까.
나는 어릴 때 숱하게 접했던 개 도살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내가 너무나도 아꼈던 개 '쌘'을 잃은 것이다. 동네 아저씨들의 한끼 식사가 되어 버린 것인데 식탁 위에서 '쌘'의 마지막흔적들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다.
시골에서 개를 잡는 방식은 다양했다. 죽을 때까지 때리거나 숨통을 단박에 끊거나. 나는 초등학생 때 집에 걸오 오면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개를 구해 주려고 밧줄을 잡아 당겼지만 힘이 부족했다. 개 주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 오는 바람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내가 자란 환경은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하는 동물이며 몸 보신을 위한 음식 재료였다. 개를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잔인한 이별이 너무 괴로웠다. 개가 사라진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뛰다 코피가 터질 정도였으니.
아빠의 지론은 "개고기는 먹기는 하지만 개는 잡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나는 아빠를 못 믿었다. '쌘'을 잃고 난 뒤 한동안 외출을 하고 귀가한 아빠의 손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뭐라고 개 식용 문화를 바꾸겠냐만 적어도 배려가 있는 도살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개들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고통도 느끼고 감정도 있으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 나는 현실에서도 엠마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