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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Apr 09. 2021

성스럽지 못한

동물3

 그러니까 나는 지금 도살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는 2008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이다. 나에게 몇 안 되는 띵작이기도 하다.


엠마는 농장에서 돼지들과 함께 산다.  돼지들과 뒤엉켜서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엠마는 돼지에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선사했다. 그리고 돼지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며 돼지에게 의지했다. 


 엠마의 특기는 고통 없이 돼지를 죽이는 것이다. 돼지는 격한 저항 한 번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엠마에게 소시지와 햄 등으로 먹힌다. 자신의 마지막을 바치는 것. 엠마는 자신이 사랑하는, 시한부 막스 역시 돼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는 엠마가 돼지를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단순한 도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존중과 존중이 담긴 신성한 의식 같다고나 할까.


 나는 어릴 때 숱하게 접했던 개 도살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내가 너무나도 아꼈던 개 '쌘'을 잃은 것이다. 동네 아저씨들의 한끼 식사가 되어 버린 것인데 식탁 위에서 '쌘'의 마지막 흔적들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다.


 시골에서 개를 잡는 방식은 다양했다. 죽을 때까지 때리거나 숨통을 단박에 끊거나. 나는 초등학생 때 집에 걸오 오면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개를 구해 주려고 밧줄을 잡아 당겼지만 힘이 부족했다. 개 주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 오는 바람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내가 자란 환경은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하는 동물이며 몸 보신을 위한 음식 재료였다. 개를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잔인한 이별이 너무 괴로웠다. 개가 사라진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뛰다 코피가 터질 정도였으니.


 아빠의 지론은 "개고기는 먹기는 하지만 개는 잡지 않는다"였다. 하지만 나는 아빠를 못 믿었다. '쌘'을 잃고 난 뒤 한동안 외출을 하고 귀가한 아빠의 손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뭐라고 개 식용 문화를 바꾸겠냐만 적어도 배려가 있는 도살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개들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고통도 느끼고 감정도 있으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 나는 현실에서도 엠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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