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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Apr 07. 2021

성스럽지 못한

동물1

 나는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다. 집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나한테 거침없이 다가와 애교를 부리길래 순한 고양이인 줄 알았다.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다음에 또 만나면 우리집에서 지내도 돼."


 나는 며칠 후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고양이를 또 만났다. 고양이가 빌라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갔다. 그리고 현관문이 열려있던 집으로 쏙 들어 갔다. 갑자기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고양이에게 콩심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고양이의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고 씨 성은 바꾸지 않았다. 고콩심. 콩심이는 아주 사납기 짝이 없었다. 털 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하악질은 기본이고 나를 물고 뜯고 할퀴었다. 뺨과 배에 핏빛 스크래치 세 줄이 자주 그어졌다. 이 썩을 고양이야.



 


 콩심이는 나뿐만 아니라 집에 오는 친구들도 똑같이 대했다. N의 팔뚝을 물어 두 개의 빨간 구멍을 냈다. H의 허벅지를  힘껏 딛고 점프를 하기도 했다. 결과는 뭐...


 나와 콩심이의 적응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십 년 넘게 변함 없는 모습을 봐서 콩심이는 처음부터 건방진 고양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적도 있다. 워낙 사나워서. 겨우 다른 동물병원을 찾아 다니고 있지만 수의사 선생님에게 미안해서 항상 커피와 파이 등을 사다 주고 있다.


 한번은 잔뜩 흥분한 콩심이가 수의사 선생님 손을 물었다. 손에 핏방울이 맺혔다. 수의사 선생님도 항복했다. "오늘 검사  못하겠네요. 손가락 아작날까봐 약도 못 먹이겠어요." 콩심이는 착한 척 내 앞에서 연기를 했고 집을 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계획적인 년. 천사 고양이인 줄!


 나는 집안에서 동물을 처음 키웠다. 공기 중에 흩날라는 콩심이 털때문에 기관지염을 호되게 앓았다. 목소리는 아예 나오지 않았고 온몸에 진이 빠질 때까지 기침을 했다. 나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콩심이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버려, 아직도 살아 있니 기타 등등.


 콩심이는 이 집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고양이였다. 오전에 외출을 하고 밤에 돌와왔는데 콩심이가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콩심이를 찾았다. 콩심이가 빌라 앞에 세워져 있던 차 밑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는 자기 집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콩심이를 돌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사료, 간식, 모래, 캣타워 등등. 동물병원에서 검사라도 할라치면 족히 30만 원이 깨졌다. 항생제 주사 한 대 5만 원, 약 한 봉지 4천 원, 피 검사, 초음파 검사를 하면 비용이 마구마구 늘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콩심이와 사는 이유는 책임감이다.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옆에 있어야지. 지나가다가 뒷발로 나를 치고 가도, 갑자기 내 발등 위에 앉아 못 움직이게 해도 가족이 되어 버렸으니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야지.


 고양이는 아프면 굶는다. 그래서 밥을 먹지 않으면 당장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얼마 전 콩심이가 꽤 아팠다. 그런데 지인들이 충격적인 말을 했다. 죽게 내버려 둬, 먹을 때까지 굶겨. 밥솥에 넣어 버려. 돈도 안 보태 주는 것들이 지뢀들은.


 남사친이 러시안 블루를 키우겠다며 분양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팔아 버렸다. 아침마다 자신을 깨워서 잠을 못 자겠다는 이유를 들었다. 못난 놈, 고양이가 인형인 줄 알았나벼. 고양이를 집에 들일 때는 적어도 천 번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고양이의 묘격은 살아 봐야 알 수 있다.


 동물 학대 뉴스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쟤들도 감정이 있을 텐데, 죽음이 두려울 텐데.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동물들은 애써 정리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럴 때 보면 나는 고양이로 안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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