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대인 소녀 이야기
‘안네의 일기’ – 요즘에는 초등학교 책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까까머리 중학교 때 였던가요.
오래되어 겉 표지와 모퉁이가 나달나달 해진 ‘안네의 일기’를 학교 도서관 옆 울창한 참나무 그늘 아래에서, 악을 쓰며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파묻혀,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수십여 년이 지나 다시 그 책을 손에 들게 되었죠.
내용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지만, 감상은 전혀 다르게 와 닿네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살던 유대인 안네 프랑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행복한 유년을 보내 던 중, 독일이 히틀러와 그가 이끄는 나치스 정당에 장악되자 네덜란드로 이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독일에 점령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가족은 아버지 회사 빌딩으로 피신을 합니다.
답답하고 밀폐된 공간.
안네는 그곳에서 선물로 받은 노트에 ‘키티(kitty)’라는 별칭을 부여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일기장에는 비좁은 은신처에서 사람끼리 부대끼며 사랑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독일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총살당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전쟁이 곧 끝나 새 옷을 입고 설레는 가슴으로 학교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죠.
사춘기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겪는 육체적, 정서적 변화에 대해서도 수줍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적을 달라고 불행한 사람을 구해 달라고 끊임 없는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보람도 없이 3년여 만에 가족 모두는 독일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고 안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아 돌아 오지 못하게 됩니다.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마음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몇 년 전 읽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작)에 나오는 ‘루마니아 스타일’이 문득 떠올랐거든요.
루마니아 스타일이란 유대인 5,000명을 열차 화물칸에 발디딜 틈 없이 태우고는 여러 날 동안 쉼 없이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계속 달리게 하여 안에 있는 유대인 모두를 질식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살해 작전을 마치고는 그 시신들을 유대인 도살장에 전시했다고 하죠.
인간의 야수성과 잔인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끝판 왕 이랄까요. (하기야,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만)
은신처에서 발각되어 열차에 실려져 죽음의 문턱으로 끌려가는 안네 프랑크를 상상해 봅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
유대인 이송을 전담했던 '아이히만'은 체포된 후 법정에서 진술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름이 돋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렇게 상기시켜 줍니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그일은 그냥 일어난 일이다"
이런 류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슬며시 떠오릅니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짧은 생을 마감한 소녀 안네 프랑크나 루마니아 스타일에서 짐짝 취급을 받으며 열차 안에서 질식해 죽어가야 했던 수 많은 어린 유대인 아이들에게
과연 신께서는 어떤 시련을 주시고자 하였고 또 어떤 구원을 주시고자 하였는지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과연 답은 없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아직 찾지 못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