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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관찰자 Oct 24. 2021

직업병

남편은 버스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몰랐던 일은 아니었다. 보름간 견습을 받는 동안 선배 기사들이 각종 기능성 방석이나 허리 받침대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루종일, 그것도 남들처럼 8시간 근무도 아니고 16시간 이상 운전석에 앉아 계속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클러치를 밟으니 양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지탱하는 허리에도 무리가 간다. 그렇지 않더라도 운전하느라 긴장해 하루종일 몸이 경직되어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특히나 승객을 태우고 가는 버스는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으니 그런 상황에서는 특히나 허리에 대신 힘이 들어가게 된다.


언젠가 남편이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심해 밤새 잠을 못 자고 끙끙댄 적이 있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남편은 그 정도는 아니라며 밤새 버티다가 오픈 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갔다. 다행히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복용하며 집에서도 찜질을 하니 그런 급격한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기사들의 가장 큰 고통이 허리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다양한 보조 기구를 소개하고 바꿔가며 이것저것 써보기도 한다. 남편도 동료들과 교환해 써보더니 지금은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하나에 정착했다.


남편은 회사 내에서 가장 고난이도의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30도 정도의 경사가 500m 가량 쭉 이어지는데, 중간에 정류장이 3개, 신호등이 4개가 있다. 그 급경사의 도로에서 수시로 차를 멈춰야 하니 다시 출발할 때 죽을 힘을 다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죽을 힘이라고 하면 과장이지만, 어차피 버스가 무거워 속도가 안 나는 걸 잘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힘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강하게 밟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무릎에 무리가 가고 어쩔 땐 식은땀까지 난다.


남편이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 목 통증이었다. 버스 기사는 자연히 오른쪽을 주로 보게 되고, 항상 시선이 그쪽을 향해 있어 목이 굳을 수밖에 없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방향인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뻑뻑하고 아프다. 남편의 동료는 원래 목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운전을 시작하고 심해져 목 디스크 수술을 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치통을 앓는 사람도 많다고 해서 엥? 싶었다.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이를 악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 이것 역시 정말 생각도 못하던 일이다.


단거리는 그나마 낫지만 남편처럼 장거리 노선을 뛰는 경우 요도염이나 위장 장애는 흔한 증상이다. 남편은 3시간 반이 걸리는 노선을 운행하는데, 그렇다보니 식사 시간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첫차를 몰 경우 아침을 4시 반에 먹는다. 스케줄마다 달라서  아침이 7시가 되기도 한다. 차가 막혀 식사할 시간이 없어 굶는 경우도 잦고, 10시에 점심을 먹은 후 9시간이나 지난 7시에 저녁을 먹기도 한다.


시력저하와 두통도 있다.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항상 앞차의 후미등, 브레이크등, 반대 차선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신호등을 보게 되니 눈이 피로하고 아프다. 눈이 너무 아프면 두통으로 쉽게 이어진다. 특히나 경찰차가 바로 앞이나 옆차선에 있으면 죽음이다. 현란한 경광등이 시신경을 괴롭히는데, 남편은 그걸 정신이 멍 때리는 게 아니라 눈이 멍 때리게 된다고 표현한다. 한번 보고 나면 눈앞에 경광등 잔상이 오랫동안 강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장시간 소음 속에서 일하니 청각도 안 좋아진다. 남편도 자꾸 목소리가 커지고 작은 소리를 잘 못 듣는다.  


버스의 기어는 무겁기 때문에 안 그래도 조작하기 쉽지 않은데, 낡은 차는 기어가 뻑뻑해 힘이 많이 들어가니 어깨가 아파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이 가끔 여기사들을 보고 불쌍하다고까지 표현한 것이 이해가 된다. 남자들도 이렇게나 육체적으로 힘든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그대신 여기사는 난코스에 투입되지 않는다. 최고난도인 남편의 노선에는 여기사가 한명도 없다. 여기사가 있는 노선은 그나마 쉬운 노선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남편이 보여주는 손가락 굳은살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는 안전을 위해 정류장에서 정차할 때나 신호대기를 할 때 반드시 왼쪽에 있는 사이드를 올려야 한다. 손 전체가 아닌 손가락을 이용하는데, 늘 장갑을 끼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왼손 엄지와 중지 옆에 굳은살이 혹처럼 볼썽사납게 튀어나와 있다. 2년 동안 전혀 몰랐던, 처음 보는 모습이다!


간단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과연 버스 기사들의 몸은 종합병원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쓰는 일이라면 버스 기사뿐만이 아닌 다른 직업이라고 왜 안 그럴까 싶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여기저기서 각자의 몸을 갈아넣으며 극한의 상황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들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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