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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관찰자 Oct 18. 2021

동료가 적이 될 때

버스기사가 하루종일 접하는 사람은 승객이다. 동료들은 근무할 때는 직접 볼 일이 당연히 없고, 중간의 휴게시간이나 식사시간에 오며가며 만날 뿐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지 않는다고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I.


노선당 최소 몇대에서 수십대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버스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기사들에게는 중요하다. 노선마다 정해진 간격을 두고 움직여야 하는데 앞차가 늦어졌다면 그건 지연한 것이 된다. 뒤차가 너무 바짝 따라붙었다면 밀착이라고 부른다.


버스 기사는 운행중 자신의 차보다 앞에 있는 두대,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두대, 이렇게 해서 총 다섯 대의 버스 위치를 보면서 상황을 파악한다. 만약 운전이 서투르거나 대열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 스트레스는 주로 뒤따라오는 차에 집중된다.


뒤차는 생각도 않고 빨리빨리 달려 휴식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는 생각이든, 아니면 뒤차가 운전이 서툴러 계속 늦어지는 상황이든, 한번 간격이 벌어지면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뒤차가 늦어지면 기다리는 승객들이 더 늘어나기에 타는 승객이 당연히 많아진다. 타는 승객이 많아지면 그만큼 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당연히 내리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니 앞차는 텅텅 비고 뒤차는 꽉꽉 차는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점점 벌어지는 간격에 화가 난 승객들이 타면서

"왜 이렇게 버스가 안 와요!"

라고 짜증이라도 내면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경우 그 기사는 속으로 억울함이나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건 휴식 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이다. 언제 들어오든 다음번에 나갈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늦게 들어올수록 제대로 쉬지 못하고 또 바로 운전대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스트레스는 서너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장거리 노선인 경우 더 급격하게 커진다.


반대로 밀착 상황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뒤차는 제대로 가고 있는데 앞차가 너무 늦어질 경우, 뒤차 운전자도 역시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못해 화가 난다. 차라리 앞에서 너무 느리게 가는 차를 추월해 먼저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그 원망이 앞차 기사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뒤차가 앞차를 아예 월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 앞차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원망을 품거나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밥탕이라고 부르는, 식사 시간 바로 전의 운행시에 그런 초조함이 더 커진다. 시간이 없어서 밥도 못 먹고 바로 운행에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기사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식당에서 밥이랑 반찬을 가득 담아서 앞차 기사가 밥을 먹고 있는 테이블에 탕, 내려놓고 바로 나와버렸다고 한다.

"이것까지 많이 처먹어라!"

소리치고 말이다.


승객이 많은 수익노선일 경우 배차 간격이 4, 5분으로 무척 짧기도 하다. 이럴 경우 출퇴근 시간에 신호 하나만 놓쳐도 바로 뒤차랑 붙게 된다. 이를 줄줄이 비엔나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딱 붙는 경우는 운전하면서도 점점 조급해지고 초초해지게 된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들도 예민해져서 신호를 놓쳤다고 기사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니 더 다급해져 무리해 운전하게 되기도 한다.


앞뒤 간격 신경쓰지 않고 운전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그냥 천성적으로 느긋한 사람이거나.


남편과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한 기사는 운전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자꾸 늦어져서 뒤차에 원성이 자자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놀라웠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늘 타는 승객이 안 타면 떠나지 않고 기다린다는 거다. 물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어느 정도 지나면 출발하겠지만, 그 승객이 다른 일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혹은 다른 버스를 타고 이미 갔을수도 있는데 그런 오지랖이 과연 필요한가? 싶었다. 사람은 좋고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바람에 동료에게는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II.


남편이 가장 미워하고 싫어하던 A 기사가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나이 먹도록 어떻게 사회생활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동료끼리 교류가 없고 다른 사람은 어떻든 자기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자기랑 운행 순서가 떨어져 있으면 같은 조에 속해 같은 날 일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남편의 바로 뒤차였기 때문에 남편과, A 뒤에 운행하는 B 기사는 그 사람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의 운행이 다 끝나고 차고지에 주차할 때는 다른 기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좁은 공간에 다음날 나갈 순서대로 켜켜이 후진주차를 해놓아야 하는데, 버스는 길어서 뒤가 잘 보이지 않아 동료가 유도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고지에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던 바로 앞차 기사의 도움을 받아 차곡차곡 주차를 하고, 그 다음 버스 내부 청소며 필요한 일을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지 작성하는 것도 그 다음이다. 하지만 A는 동료가 주차를 봐주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차고지 다른 곳에 버스를 세워놓고 청소며 일지 작성이며, 끄떡없이 자기 일부터 다 하고 주차 공간에 오곤 했다.


작년 겨울, 수은주가 영하 10도 이상 떨어진 날 남편은 A의 차가 차고지 입구로 진입하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곧 오겠지, 오겠지, 덜덜 떨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거였다. 추운 데서 떨며 20분 가까이 기다린 남편은 나중에야 그 차가 나타나자 그동안 쌓인 것도 있고 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야이, 차에 광택을 내라, 광택을 내, 이 ** **야!!!"


남편은 나이가 두어살 많던 A에게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하며 난리 난리를 쳤고, A 뒤에 들어올 B에게 전화해 나 저 놈 때문에 일 낼 것 같으니 그냥 집에 간다고, 형님이 대신 주차 봐달라고 했다. 남편이 씩씩대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흥분한 A가 남편을 잡았지만 남편은 뿌리치고 집으로 와버렸다. 중간에 몇번 전화가 왔지만 남편은 무시했다.


그 뒤로 서로 무시하고 못 본 척하고 지냈지만(사실 A는 다른 기사와 교류가 없어 크게 신경쓸 것 같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남편이 먼저 다가가 사과를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이도 많은 사람에게 삿대질과 함께 쌍욕을 하며 길길이 뛰었으니.  


III.


위의 두 경우와 다르게, 기사의 잘못이 아닌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인해 서로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남편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의 예상과 다르게 2년 가까이 마을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고통받았었다. 너무나도 다양한 일들,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아서 <나는 마을버스 기사의 아내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남편이 마을버스를 몰 때 그 버스의 종점은 차고지가 아닌 대로변이었다. 운행을 마쳐도 따로 휴식공간이 없어 다음 출발시까지 차 안에 그냥 있을 수밖에 없는데, 공회전을 할 수가 없으니 한여름에는 찌는 듯 무덥고 한겨울에는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을 해결할 도리가 없다. 회사에서는 시와 협의해 육교 밑에 소형 컨테이너 박스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기사를 소모품으로 보는지라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기사들도 마을버스에서 6개월 있어야 시내버스로 승급이 되기 때문에 눈밖에 나면 안 되니 6개월만 참자, 하고 버틸 수밖에 없다.


남편은 차 안이 달궈져서 도저히 안에 있지 못할 때는 가로수 밑 그늘에 서 있기도 하고, 한겨울에는 몸에 열 나라고 버스 안에서 맨손체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승객이 타면 머쓱해지고... 게다가 옆 상가의 민원으로 인해 한번에 두대만 차를 댈 수밖에 없어 수시로 차를 앞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 옆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혹은 동료 기사가 화장실을 간 경우에도 대신 차를 빼줘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제대로 된 휴식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차에 있기 편한 봄가을이어도 승객들이 미리 와서 승차해 있기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다. 어차피 보장된 휴식 시간이라 차 문을 닫고 있어도 되지만 밖에 서 있는 승객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딱 문 닫고 뒷좌석에 누워서 쉬는 기사들이  있었다. 위에 말한 A가 그 둘 중 하나였다. 그러면 승객들은 두대 중 문이 열린 쪽으로 와서 타고, 언제 출발하냐고 묻는다. 사실 근무중 휴식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여건이 안 되는데도 혼자서만 그렇게 드러내놓고 쉬는 것은 다른 동료들이 보기에 편하지 않다.


그나마 문을 열어놓은 차가 앞에 있으면 뒤차가 문을 닫고 있는 것이 꼴보기는 싫어도 직접적인 피해는 아니니 크게 상관이 없다. 어차피 먼저 출발해야 해 승객들이 이 차에 타는 것이 맞으니까. 그러나 A와 C는 자기 차가 앞에 있어도 출발 시간까지 절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면 승객들이 뒤차에 와서 출발 시간을 물어보고, 앞차가 잠겨 있으니 뒤차에 앉아있다 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휴식 시간을 누리려는 그들 때문에 다른 기사들은 계속 승객의 문의에 답변을 해야 하고, A와 C가 쉬는 만큼 오히려 일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그렇게 쉬는 기사들이 곱게 보일리가 없고 감정이 쌓인다. 그런 문제로 언쟁이 붙었을 때도 태도에 변함이 없다면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회사가 기사들의 휴식 공간에 신경을 썼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을끼리 미워하게 되는 상황이 비극이다. 하지만 다같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 않고 자기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그 사람의 모습 역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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