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마을버스를 몰던 시절, 자주 타던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항상 얌전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아이였는데,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어 보였다.
남편이 버스를 몰게 된지 얼마 안 되던 그때, 남편은 마을버스는 일종의 친근한 시골버스라고 생각해 승객들을 가족같이 대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인사는 공손하게 잘 하지만 상대방의 눈을 잘 못 마주치던 그 아이가 타면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걸고 쾌활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여~ 너 또 내 차 탔구나?"
"거기 서 있지 말고 저기 가서 앉아. 맨 뒤에 가면 자리 있어.”
아이가 인사를 하고 내리면
“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해!”
하며 큰 소리로 잘 가라고 말하곤 했다.
아이는 남편의 차를 자주 탔다.
"어, 오늘도 만나네?"
"저 일부러 기다렸어요."
"응? 어떻게?"
"아저씨 차 번호 (예를 들어)1234잖아요. 그 차 기다렸어요."
인터넷으로 현재 운행하는 차량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아이는 일부러 그걸 보고 기다렸다가 타는 거였다.
몇달 안 되는 새 아이가 점점 키가 자라는 게 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왠지 초등학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내심 들었다.
그 아이는 남편이 말을 걸어주고 하니 주로 운전석 뒤쪽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날 남편이 말했다.
“야, 너, 관악산 가깝잖아? 산에 올라가서 호연지기를 키워. 운동을 해야돼.”
"힘들어요."
"뭐가 힘들어?"
"공부하느라 힘들어요."
아,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그래, 이런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 데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게 중요하겠다.
"어, 그래? 그럼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복지과를 가라."
"이미 하고 있는데요."
"뭐?"
"저 사회복지과 다녀요."
남편은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어린아이 대하듯 했던 어조가 싹 바뀌고,
"어.... 그래...? 무슨 학교 다니는데?"
알고보니 그 아이는 초등학교가 아닌 전문대를 다니고 있었다!
집안도 형편이 넉넉한 것 같지 않고, 그 아이도 나름 어려운 점이 있겠다 싶어 어느날 남편은 말했다.
"야, 너 공부하느라 힘들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아저씨 차 타러 와. 드라이브 한 바퀴 하고 집에 가면 좋잖아?"
남편이 몰던 마을버스는 종점이 일반 차고지가 아니라 대로변이었는데, 어느날 그 아이가 종점으로 음료수를 들고 찾아왔다. 대로변 옆의 분식집에서 돈까스 정식을 먹던 남편은 아이를 불렀다.
"이리 와, 이거 아저씨한테 너무 많아. 같이 먹자."
같이 점심을 먹은 아이는 남편 차를 타고 출발해 평소에 내리던 곳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식집에서 김밥을 자주 사가 종업원들도 그 아이에 대해 알더란다.
그 뒤로도 그 아이는 종점으로 종종 찾아와 버스를 탔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올 때도 있었다. 종점이다 보니 남편은 다른 기사도 소개해주곤 했다.
"여기 이 기사님 알지? 이 기사님한테도 잘해 드려라~"
"네."
아이는 소개해주기 전에도 기사들 얼굴은 이미 다 알고 있더란다.
여기까지 썼으니,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으리라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처럼 항상 관심을 기울여주기는 힘든 법. 초짜 마을버스 기사의 다짐에서 우러난 남편의 환대도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가 타면
"여~ 왔구나!"
하던 반응에서
"어, 왔어?"
정도로 바뀌니 아이도 점차 남편의 차만 기다렸다 타지는 않게 되었다. 아마도 남편이 소개해 준 다른 기사들의 차도 탔다가, 또 다른 차도 탔다가, 하지 않았을까. 다른 기사들도 역시 처음에는 호의를 보였지만 나중에는 일상이 되지 않았을까...
남편은 2년 가까이 몰던 마을버스에서 지금의 시내버스로 세달 전 승급이 되었는데, 그 한참 전부터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취업이 되거나 알바라도 하느라 다니는 길이 달라졌는지, 이사를 갔는지, 그건 현재 알 수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