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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관찰자 Sep 16. 2021

남편의 썸녀를 챙기는 여자

앗, 개별 포장된 쿠키가 세일이다. 잘 됐다, 싶어 집어든다. 대용량으로 들어있는 것보단 이게 낫지!

얼마 전에는 호두파이를 구워 남편에게 들려 보냈다. 매일 남편만 얻어먹을 수 없으니 챙기는 건 내 일이다.


오늘도 새벽 1시에 퇴근한 남편이 받아온 봉지에는 깔끔하게 포장된 사탕, 초콜릿, 과자들이 들어있다. 집에 굴러다니는 비닐이 아닌 일부러 돈을 주고 소분용으로 마련한 포장비닐에 예쁘고 다양하게 담겼다. 응? 내가 좋아하는 토블론 미니 초콜릿까지!


버스 기사들은 각자 정해진 차가 있어 그것만 몬다. 격일 근무를 하기 때문에 A, B 두 조로 나뉘어 버스 한 대로 두 명이 운전하는 셈. 그 두 명은 근무일이 달라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같은 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연락할 일이 많다.




"뭐? 뭐라고? 짝꿍???"


남편이 이 일을 시작하고 같은 차를 모는 동료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려줬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아니, 나이 오십 넘은 중늙은이들이 짝꿍이 뭐야, 짝꿍이? 그냥 짝이라고 하면 몰라도!"


남편의 짝꿍은 남편보다 다섯살 많은 여기사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부부 기사인데, 어찌나 사근사근하고 싹싹한지 다른 남기사들이 저런 여자랑 살면 좋겠다고 한단다. 차량 청소도 기사가 할 일 중 하나지만 남편에게 자기가 청소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단다. 그리고 어찌나 쓸고 닦는지 버스가 반짝반짝하다고.


기존의 남편 짝꿍이 다른 노선으로 간 뒤 새로운 짝꿍인 이 여기사가 오고 남편이 차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조금의 변화나 문제가 있어도 바로바로 알려주고 예전 기사보다 긴밀히 연락한다.


또다른 변화는, 매번 운전석에 놓여있는 다양한 간식. 새벽에 출근해보면 그 몇시간 전에 퇴근하면서 놓고 간 음료수나, 과자나, 초콜릿 등등이 있다. 가끔은 쉬는날인데도 일부러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남편차를 기다렸다가 간식거리를 주고 가기도 한다!


처음 몇 번 정도는 남편도 별 생각 없이 고맙게 받았다. 하지만 두번 받았으면 적어도 한번은 보답해야 예의. 남편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이렇게 안 줘도 된다고 해도


"아니, 기사님은 신경쓰지 마세요! 저는 제가 먹는 거 나눠드리는 거예요."


하면서 매번 챙기니 남편도 미안해서 가만 있을 수가 없다. 집에 와서 뭐 가져갈 거 없나 두리번두리번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따로 챙겨주거나 장을 볼 때 일부러 사거나 한다. 운행 중 쉬는 시간에 틈틈이 먹는 간식이니 커도 안 된다. 조금씩 출출함을 때울 정도가 딱 좋다.


그 여기사는 다른 날에 근무하니 다른 조지만 같은 조에 또다른 여기사가 있다. 남편은 여기사들이랑 대체로 잘 지낸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 하면서도 동료들끼리 사이가 좋은 게 보기 좋다. 하지만 남기사들끼리랑은 다른 뭔가가 있는 듯. 아무래도 남녀간의 관계는 동성과 같지 않게 약간 다른 케미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남편의 여자 동료를 위해 조건에 맞는 간식을 매번 챙기는 내 스스로를 보면서 남편에게 그랬다.


"뭐야, 둘이 썸 타는데 내가 매번 이렇게 챙겨줘야 하는 거야?"

"썸녀한테 이렇게 신경쓰는 마누라 봤어?"


남편이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면 애들도 그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걸 골라간다.


"아빠 또 썸녀에게 받아왔어?"


하면서.


이제 짝꿍이라는 단어는 없어지고 썸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이들이나 내가 아닌 남편이 그 여기사를 썸녀라고 부를 때는 살짝 어이가 없다. 가끔 남편은 애들한테 우스갯소리로 썸녀 말고 큰엄마라고 하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요즘엔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 모를 수도. 예전에 본부인을 후처 소생의 자식들이 큰엄마라고 불렀다. 그 반대는 작은엄마.)


"뭐? 웃기고 있네.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작은엄마지 어디서 큰엄마?"


"아, 그런가?"


가끔 나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언제 제과점 고급 과자가 선물로 들어와서 그 중 몇개를 보냈을 뿐인데 그 답례로 비싼 과자 선물세트를 보냈다! 그것도 쉬는 날 일부러 나와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뭔가 적당한 게 보이면 챙겨두게 된다.

그래서 난 여전히 남편의 썸녀를 챙기는 여자.




이건 예전에 써둔 글이다. 남편은 여기사가 일할 수 없는 험난한 코스로 옮겨서 현재 같은 노선에서 일하는 여자동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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