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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관찰자 Aug 31. 2021

말로만 듣던 공갈 자해사기단에 당하다

나의 글쓰기 귀차니즘을 일시에 없애준 사건!

2년전, 남편이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겪는 일들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생각도 못했던 일들, 새로운 경험들, 혹은 만연한 불합리와 부조리. 혼자 알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에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머릿속 제목은 <나는 마을버스 기사의 아내입니다>였던....) 천성이 게으른지라 미루고만 있었는데 오늘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어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여자 승객이 넘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고가 한번도 없던 남편인데 저런 목소리는 처음이다. 전화로 들어서는 큰일같지 않은데 워낙 사소한 일에 걱정인 남편이라 굳이 나까지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들은 사건의 재구성.


뒷자리로 간 그 승객은 버스가 정류장에서 출발할 때 앉기 전이었다.

"어어어~ 기사님!"하고 부르기에 차를 멈췄는데 그 승객이 앞으로 넘어져 뒷문 계단으로 굴렀다. 3미터 정도 차가 움직였으니 속도가 났을리 없고 급브레이크 밟을 일도 없는데 넘어지니 주변에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고 한다. 어떤 승객은 그 여자 승객에게 "조심해야 돼요!" 하고 쏘아붙였다고. 남편은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후 가서 괜찮으시냐고, 병원에 가시라고 했다. 승객이

"아유~ 창피해."

해서 남편이

"창피한 건 전혀 문제가 안 되고요, 다치거나 아픈 게 문제지요. 꼭 병원에 가보세요."

하면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남편이 차고지에 돌아왔을 때 전화를 하니 안 받았고, 나중에 운전중일지 모르니 문자를 남긴다고, 전화를 달라는 문자가 와서 통화를 했다. 여기저기가 다 아프다고 했단다.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그날 말고 다음날 간다고 했고, 그러면 남편이 자기가 병원까지 동행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니, 그냥 넘어진 게 아니고 계단으로 굴렀다고? 와, 온몸의 근육이 다 놀랐겠네... 당연히 여기저기 다 뻐근하고 아프겠다. 그리고 운전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 보면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했었다. 남편이 통화녹음한 목소리를 들려줬는데 뭐, 교양있어 보였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기는 했다. 남편 말로는 절대 넘어질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거야 운동신경이 둔할 수도 있고 운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차가 출발했다고 기사를 불러세우는 일이 그렇게 흔한가....? 그리고 급브레이크를 밟을 속도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떻게 해요!" 했단다. 남편이 급브레이크가 아니라고 하면 넘어진 승객 입장에서 기분 나쁠까봐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사실 합의금을 노리고 사고를 유발하는 일들은 이 일 시작할 당시부터 많이 들었었다. 연령과 패턴도 있다. 살짝 넘어져서 그때는 괜찮다고는 말해도 나중에 연락와서 치료비나 합의금을 요구하는 일이 많은데, 큰일이 아닌 이상 회사에 보고가 되면 불리하니 돈없는 기사들도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 몇십만원 주고 해결한다고 한다.


남편은 2년전 버스운전을 시작했다. 마을버스를 기본적으로 5, 6개월 몰고 나면 시내버스로 승급이 되는 구조. 2백만원 남짓으로 십대 아이 둘을 키우기에는 절대 불가능한 박봉이지만 반년 정도는 빚내가며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승객이 줄어 시내버스로의 승급은 계속 늦어졌고... 여러번 고비가 있었지만 계속 희망고문을 하며 버티다 간신히 시내버스로 승급을 한지 두달이 안 된다. 같은 회사지만 승급을 하고 나서도 정직원이 되기까지 3개월의 유예 기간이 있다. 3개월 전에 사고가 나면 파리목숨처럼 잘리는 거고, 2년 가까이 버틴게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상황.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지켜보자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연락이 오는 내용을 보니 염려했던 시나리오가 딱딱 들어맞는다. 남편이 여기저기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렸더니 다들

"꾼이네!"

하는 반응이다. 그냥 2, 30 정도 현금으로 줄 걸 예상하란다.


자세한 내용은 악용이 될 수 있어 여기에 글로 남기기가 곤란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니 올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다.


남편이 전화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얘기했다고 한다. 승급이 안 되어 오랫동안 마을버스에서 고생했던 것, 이제 시내버스로 올라갔는데 정식 계약이 된 게 아니라서 한달을 더 버텨야 한다는 것 등.


남편이 병원에 같이 간다고 계속 말했는데 거부하고, 언니와 함께 병원에 간다고 했다. 나중에 까페에서 만나자고 한다. 남편이 나가니 몸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어 언니만 나온다는 연락이 왔다. 뭐? 친언니가 맞을까? 둘이 나눠먹어야 하니 처음 생각한 2, 30만원 가지고는 안 되겠구나. 얼마나 부를 생각일까?


죽어가는 목소리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150에서 200을 내놓으란다. 남편이 차라리 공갈협박으로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한다.


남편이 승객이 완전히 앉은 다음에 출발한 게 아니라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정식 소송으로 가면 몇 %가 될지 모르지만. 하지만 그동안 회사가 기사들을 얼마나 발톱에 때만큼도 안 여기고 파리목숨 취급하는지 충분히 보아왔는데 여기서 모험을 할 수는 없다. 그 승객이 남편이 3개월 파리목숨이라는 걸 안 것도 아닐텐데 어쩌면 이렇게 운이 없을까...


남편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제발 살려달라 애걸복걸 빌고 있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힌다. 경찰에 신고하고 조회하면 이 여자들의 기록이 나오지 않을까 했다가 마음을 접었다. 회사에서 이런 일에 전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기사들이 혼자 남몰래 처리하니 기록이 남을리가 없다.


결국 50만원으로 합의를 보고, 언니인지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여자가 자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하지만 남편이 그 승객 계좌를 달라고 해서 다시 받았다. 남편이 알려준 계좌로 송금을 하고 남편을 위로했다.


이런 일 많이 들었지 않냐고, 큰 사고 아니니까 액땜한 셈 치라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툭툭 잘 털고 일어나는 편이다. 그렇지 못한 남편은 사소한 일에 끙끙댄다. 200 남짓 벌다가 이제 300 버는 남편이 50만원을 털렸으니 얼마나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앓을까. 왕초보일 때도 안 당했던 일을 이제 당했다고 속에서 불이 난단다. 오는 길에 소주 사갖고 온다고 전화가 왔다. 난 냉동실 뒤져 안주라도 만들어야겠다.


흠...

안주 만들 때가 아니다.

나도 낙법을 배워 돈 벌러 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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