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상관찰자 Oct 19. 2021

버스 기사들의 예상 외 전직들

처음부터 버스 기사가 목표였던 사람은 없을 거다. 자기 앞을 지나가는 커다란 버스가 멋져 보여 눈을 반짝이며

"나 커서 버스 기사 될 거야!"

하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다양한 굴곡들과 삶의 경험을 거쳐 최소 중년이 되어서야 여기로 오게 된다. 물론 세상이 넓으니 다른 곳에는 젊은 기사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남편이 아는 사람들은 100% 40대 이상이다. 2년전 이 일을 시작했을 때 30대였던 동료도 지금은 40대가 되었다.


아, 현재도 30대인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버스운전자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구직 과정을 거쳐 2년전 남편과 동기로 입사했을 때, 며칠동안 견습을 받더니 그만두고 말았다. 너무 무섭고 떨려서 못하겠다고. 그래서 그는 다른 운전직을 구해 노선 버스가 아닌 통근 버스를 몰고 있다. 결국, 남편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젊은 노선 버스 기사는 현재 마흔살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접하는 기사들의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 내가 생각도 못한 인생들이 있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 나도 예전엔 그들이 처음부터 기사였고 앞으로도 기사일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항상 인사하며 버스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들은 그저 내가 탄 버스의 운전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을 통해 다양한 얘기들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친한 동료는 대기업 외국 지사에서 오래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샐러리맨보다는 기술직인 운전이 더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버스 기사는 정년이 지나도 1년씩 계약하며 칠순까지는 일할 수 있다.


남편이 아는 기사 중 고등학교 선생님 출신이 둘이나 된다. 그 중 한 명은 아이들이 너무 버릇이 없어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때려치고 나왔단다. 나이 50이 넘었으면 경험도 많을텐데, 과거에 비해 점점 떨어지는 교권이 견디기 힘들었나보다.


남편 동료 중에는 목사 출신도 있다. 원래 격일로 근무하기 때문에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운행을 해야 하는데, 이 목사 출신 기사는 일요일날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라면 반드시 휴가를 낸다.


은행 지점장 출신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달라진 처지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코로나 이전이었는데도 마스크를 항상 쓰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두려워 했다. 결국 얼마 못 버티고 그만두고 말았다.


남편이 가입한 버스 기사들의 밴드에서 유려한 글을 올리는 기사가 있었다. 사유나 문장이 눈에 띈다고 생각했는데 금융쪽 정부기관에서 오래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명문대 나왔다고 자랑한다 여겨 그를 꼴보기 싫어하는 멤버도 있긴 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했는데 하는 족족 망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리저리 알아보고 남편을 설득해 버스 운전을 하게 했다. 남편이 힘들어하고 그만두려 할 때마다 아내는 절대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열성으로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래서 이제 10년이 넘는 베테랑 기사가 되었고 아내도 기사가 되어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증권사 팀장 출신이 있었다. 그는 요즘의 주식붐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업계도 활황인지라 운전을 그만두고 증권업계로 돌아갔다.


유명 백화점 임원과 육사 출신의 고위 장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버스를 몰다가 관리직으로 발탁이 되어 현재 회사 임원이다. 워낙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중년 이상이 몰려들다 보니 회사에서는 회사내 필요한 능력을 가진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버스 기사가 천대받았던 예전에는 고도성장기라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었고, 중년의 남성들이 중간에 새로운 직업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원하는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시대.


버스 기사가 되는 것도, 그리고 사고 없이 계속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대형 면허를 따고, 버스 운전자 자격증을 따고,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버스 운전자 양성 교육을 2주간 받고 나서 원하는 회사의 구인을 기다렸다가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거쳤다. 경쟁을 통해 같은 시기에 입사한 5명의 동기 중 계약 기간 1년이 지난 시점에 남은 사람은 남편 하나밖에 없었다.   


남편 말로는 서울에서 버스공영제를 실시하면서 경쟁이 세진 것 같다고 한다. 서울은 적어도 다른 지역에서 2, 3년 이상 무사고로 운전해야 하고 추천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대우가 좋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몇년을 기다려도 서울로 옮기고 싶어하고,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서울처럼 대우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나마 요즘에는 예전보다 직업의 귀천이 많이 없어져 다행이다. 버스 기사라는 생각도 못한 직업을 택한 남편을 통해 나도 나만의 좁은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전 07화 길 위의 인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