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가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인 줄 몰랐었다.
안전 운행의 조건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중의 하나가 버스 내의 승객 안전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그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게 전부다. 충돌 사고가 나더라도 승객이 다치지 않으면 된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실제로 다치지 않았더라도 괜히 뒷목 잡거나 몸 어디가 아프니 보상해 달라고 하는 승객은 반드시 나온다는 얘기다)
버스는 늘 달리고 있기 때문에, 혹은 멈추려고 하거나 출발하려고 하는 중이기 때문에, 항상 물리적인 흔들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흔들림은 탑승 중인 승객들에게 내내 전달되고, 그렇기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흔들림 와중에서의 돌발 상황은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니 기사들은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있는데, 대부분 승객과의 갈등을 야기하기에 큰 스트레스가 된다.
I.
서울시에서는 음료를 들고 버스에 탑승하는 것이 조례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뚜껑 달린 음료를 손에 들지 않고 가방에 넣는 것은 가능하다. 그게 뭐 대수라고, 싶지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밖으로 흘리거나 튀기 쉽고, 게다가 뜨거운 커피가 다른 승객에게 튀어 화상이라도 입혔을 때는 문제가 커진다. 그래서 2018년 서울시에서 조례를 제정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고, 그런 내용은 버스 정류장에도 안내문으로 붙어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아닌 곳에서는 조례가 아닌 회사의 규칙으로만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따로 버스 내부든 정류장이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지 않기에 기사가 일일이 규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매번 승객을 제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승객과 갈등상황을 만드는 것을 피하고 싶고, 일일이 말하기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못본척 하거나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제지하더라도 한가한 시간에는 용인해 주거나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한번도 제지받은 적이 없던 사람은 규정대로 하게 되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혹은 반감을 품게 된다.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으면 저길 보라고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니 기사랑 승객이랑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생긴다. 시간에 맞춰 운전하랴 버스 내부 상황 룸미러로 살피랴 정신없는데 승객과 말다툼이 벌어지면 스트레스 지수가 솟아 안전 운행에도 방해가 된다.
남편 동료는 컵을 들고 탄 승객을 제지했는데도 들은 척 만 척 무시하고 올라타서 맨뒤로 가버려 화가 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승객에게 큰 소리로 뭐라고 했는데 끝까지 못 들은 척 하더란다. 그러다 운행 중 실수로 턱을 과속으로 지나가 맨뒤의 다섯자리 승객들 엉덩이가 붕 뜰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중 가운데에 앉았던 바로 그 컵 든 승객이 몸이 아프다며 합의금을 요구했다. MRI도 찍어야 하고 뭐도 해야 하고, 백만원을 달라고 했는데 간신히 30만원으로 합의를 보았단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료는 그 승객이 자기가 뭐라고 했다고 앙심을 품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승객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모른 척 한단다.
II.
버스 안에 들고 탈 수 있는 짐의 크기는 최대 50cm * 40cm * 20cm, 무게는 10kg로 제한되어 있다. 그 이상이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다른 승객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짐이 너무 크면 택시를 타는 게 맞지만 그러자고 돈 몇만원 쓰기 쉽지 않은 심정을 이해하기에 사람이 붐비지 않으면 용인해주고는 한다.
사실 위의 케이스처럼 그것도 문제다. 커다란 짐 들고도 아무 문제 없이 타다가 갑자기 제지를 당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니, 다른 기사는 안 그러는데 당신은 왜 유난을 떨어요?"
이런 식으로 항의하거나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태워주더라도 그 사이즈의 짐은 원래 안 된다고 말하며 탑승을 허락하는데, 골프채를 든 승객이 남편이 그렇게 얘기하니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뒷문 위에 붙어있는 남편의 버스 운전자 자격증을 보며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남편에게는 불쾌한 일이다.
남편 버스에 30cm * 150cm 정도의 긴 박스를 든 승객이 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엄청 무거워서 손잡이 대용으로 뚫어놓은 구멍에 손을 넣고 낑낑 들어올리는데 그 구멍이 계속 찢어지더란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태워주긴 했지만 남편은 그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승객은 그 무겁고 긴 박스를 자기가 앉아있는 옆에 그냥 세워놓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스 관리 잘 하셔야지, 지금 핸드폰 볼 때가 아니에요."
남편이 주의를 주자 승객은 세워놓은 걸 바닥에 옆으로 뉘였다. 그런데 운행 중 그 박스가 옆으로 굴러 다른 승객의 발 위에 딱 떨어졌다. 다른 승객은 움찔하고 잽싸게 발을 치웠는데 남편은 아찔해졌다. 저게 세워져 있다 덮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어서.
남편 버스에 20대와 50대 모녀가 탔다. 이번에도 너무 큰 짐은 안 된다고 했더니 엄마쪽이큰소리로
"뭐? 별 웃긴 소리 다 듣겠네!"
하더니 눈을 흘기며 타더란다. 남편은 열불이 났지만 꾹 참았다. 그러다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정차할 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50cm * 40cm * 20cm 이상은 못 들고 타는 거예요."
그러자 딸쪽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아, 그건 됐구요! 진짠지 아닌지는 내가 직접 알아볼거예요!"
그러면서 뒷문 위에 붙어있는 남편의 사진을 찍었다. 신고를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이다.
만약 버스 기사와 승객이 아닌 상황이었다면 그런 수모를 참을 이유가 없었을 거다. 그런 경우 남편은 이깟거 당장 때려치고 싶어진다.
III.
버스 기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가 카트 끄는 할머니다. 카트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승객을 칠 수 있어 원래 버스 휴대가 금지되어 있는데, 게다가 할머니가 들고 탈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자리에 앉거나 일어설 때, 혹은 내리려고 출구 쪽으로 갈때, 몸이 기우뚱하면 본능적으로 옆의 손잡이나 기둥이 아닌 카트를 향해 손을 뻗게 된다. 그러면 그 다음은? 바퀴 달린 카트와 함께 구르는 것이다.
버스 안의 모든 상황은 기사 책임이다. 운행중 승객이 다쳤으니 기사 책임이고, 카트 때문에 다쳤어도 위험 물건을 싣게 한 기사 책임이다. 사고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사고가 생기면 벌금을 물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번 입씨름하기 힘들어 그냥 가만히 있는 기사들이 많다.
IV.
원칙적으로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케이지에 넣지 않으면 버스 탑승이 금지되어 있다. 품에 안거나, 케이지가 아닌 일반 가방에 넣으면 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민원이 들어오면 기사가 벌금을 내게 되어 있다.
언젠가 남편이 운행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낑낑 소리가 났다. 이상하다 싶어 룸미러로 보니 쇼핑백 안에서 조그만 머리가 밖으로 삐죽 나와있더란다. 그렇게 숨겨서 태웠을 정도면 탑승이 금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남편은 그 승객에게 막 뭐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동료가 승객이 안고 타는 개를 봐줬는데 그걸 다른 사람이 찍어서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그 동료는 벌금 20만원을 냈다.
남편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라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이런 규정들을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라리 서울시처럼 조례로 정해 정류장이나 버스 내부의 안내문을 통해 공지를 하면 좋은데 기사들의 재량으로만 맡기니, 기사들은 승객과의 다툼이 피곤해 아무말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기사들이 미연에 방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옴팡 뒤집어쓴다.
남편은 승객들에게 수시로 안내하고 설명한다. 탈 때 바빠서 말을 못하면 신호대기 중일때도 안 되는 이유를 승객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제발 승객들에게 안내하라고 한다. 구내식당에서 일부러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옆에 있는 다른 노선 기사들도 들으라고.
"우리가 이 일 하루이틀 하고 말 거 아니면 꾸준히 계속 이야기를 해야지, 안 그러면 되겠어? 계속 말하고 또 말하고 그래야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