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이별

by 이재현

어제 꿈에 경전이를 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의 진심을 이해 못 한다며 많이 힘들어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경전이는 내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경전이는 나의 친구입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반으로 만났습니다. 주말이면 함께 등산을 했고 캠핑을 다녔으며, 여름방학에 울릉도로 무전여행을 떠나자고 다짐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습니다. 한 번은 팔당댐 하류에 야영을 했다가 갑자기 물이 불어 크게 위험에 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땜을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의 허락을 얻어 팬티 차림으로 팔당댐을 가로질러 강 건너편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는 크게 관심 없이 이리저리 배회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그는 선생님이 되겠다며 사범대학에 진학하였고 강원도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영월 처녀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얻었고, 봉평에서 자신이 원했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경전이의 부고를 그의 장례식이 끝난 열흘 후에나 접했습니다. 산에서 실족을 하였답니다. 핸드폰을 찾지 못해 친구들의 연락처를 몰라 그냥 가족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렀다 합니다. 49제라도 참석을 기대했으나 그 의식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기에 나는 그를 그렇게 서운하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일 년 전에 안부 전화를 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지 “ 하는 나의 안부에 “나 아프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파킨슨이라는 병을 얻었다네요. 그때는 그냥 손발이 떨리는 병 정도로 알았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다시 안부 전화하니 원주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원주에서 한 달간 요양보호사 자격연수를 하는데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해서 참 아내 사랑이 지극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친구의 간호를 하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되려 했던 것이고, 친구는 아내 없이는 혼자 생활이 어려워 아내를 따라 원주에 따라갔던 것입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봉평을 방문하였습니다. 도착 전에 점심을 함께하자고 봉평에 있는 음식점으로 오라 하니 못 나간다고 하네요. 집으로 가서야 친구가 거동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두 시간여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죽는 날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모두 울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 나누는 것을 힘들어하는 친구를 꼭 안아주며 우리는 이별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생전 경전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친구,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도시에 있는 학교로 부임을 원했지만 강원도를 선택하였던 친구입니다. 전교조의 추구 가치가 좋아 가입했다가 자신을 설득할 탈퇴 명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4년 동안 해직 교사의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논을 조금 마련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나는 그때 친구에게 경운기를 한 대 사 주겠노라고 약속을 해놓고 펑크를 냈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수확한 쌀과 감자 등을 보내주는 마음이 넓은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친구가 왜 산에 갔는지 궁금합니다. 그 몸으로 어떻게 산에까지 갔는지 모릅니다. 열흘 전부터 갑자기 운동을 열심히 하더란 말을 친구 애내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있던 날 아내를 멀리 심부름 보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짐작으로 친구의 깊은 뜻을 헤아릴 뿐입니다. 아마 어제 꿈에 온 것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친구가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하지 못한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어제 꿈에서라도 얼굴을 보여준 친구가 고맙습니다. 이제야 친구를 편하게 마음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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