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

by 이재현

요즘 내가 많이 참석하는 행사는 결혼식과 장례식입니다. 결혼식은 지인 자녀의 결혼이고, 장례식은 주로 지인 부모의 장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친구의 장례식에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부고를 접할 때마다 나의 죽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장례식 모습은 어떠할까?


죽음에 대하여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하던 사업을 접으면서 방황했었던 50대 초반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아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렸습니다. 읽었던 책들에서 죽음이라는 소재가 종종 등장하였고, 그 소재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 등을 거쳐 급기야는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 나이 5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나는 웰다잉 강사 양성과정에서 공부도 해 보았고, 웰다잉 연극단원들과 함께 죽음에 대한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음과 나는 어느덧 친근한 사이가 되었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죽음과 직접 대면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삶을 대하는 자세가 변한답니다. 나에겐 운이 좋게도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1년이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수술을 하면 3년, 안 하면 1년이라고 의사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종합검진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2년 주기로 종합검진을 받는다 합니다. 검진에서 용정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도 난 종합검진을 받지 않았습니다. 몸에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내 몸은 스스로 그것을 치료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몸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을 미리 발견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몸이 스스로 치료를 하지 못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습니다.


수술하지 않겠다는 나의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공부도 많이 했고 그리고 정리도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해 왔습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내 삶을 멋지게 마무리하기에 충분하고 또 고마운 시간입니다.


걱정되는 일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분명 수술을 하라고 우길 것입니다. 아내보다 먼저 죽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내가 떠난 후 바로 따라가겠노라고 말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됨이 제일 죄스러운 일입니다. 아내와 한 달 여행을 할 것입니다. 아내하고 여행 같은 여행 한번 같이 한 기억이 없습니다. 나이 들고 여유 생기면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자고 아내는 종종 말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런 기회가 온 것이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그 한 달을 십 년보다 길게 느껴지도록 보낼 것입니다. 아내에게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도록.


아이들과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려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눈치입니다. 내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자기들 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무척 당황스러워할 것입니다. 나는 이야기하려 합니다. 서운해하지 말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너희가 있어서 내 인생은 기뻤으며, 너희들 때문에 내 삶이 의미가 있었고, 너희들이 내 삶을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고. 그리고 마지막 부탁을 하려 합니다. 내 몸의 물리적 흔적을 남기지 말아 달라고. 화장을 하고 난 내 몸의 잔재는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라고. 난 이미 나의 일부를 너희와 함께한 경험을 통해 너희들의 기억 속에, 또 유전자를 통하여 너희의 몸에 남겨졌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며, 더 이상의 것은 의미 없는 것이라고. 꼭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고.


내 삶에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책을 쓰는 동안 지난 시간을 음미해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좀 아쉬웠다고 생각되는 일에도 어깨를 두드려 주려 합니다. 그리고 책이 마무리되는 동시에 내 삶 또한 멋지게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친구 부모의 장례식에는 친구가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았습니다. 친구 본인의 장례식에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와 이별의 정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나의 장례식에서 친구들과 이별주를 마시며 고맙고 즐거웠다고 직접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장례식을 나의 생전에 치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죽는다' 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는 나의 존재에 대한 견해입니다. 나의 유전자는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졌고 그렇게 또 계속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 내 삶의 결과물들은 나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질 것이며, 기록물들을 통해 타인들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나의 육체는 어떠한 형태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바닷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고, 어느 시기엔 시냇물로 또는 강물로 존재하며 결국엔 다시 바다로 가는 것처럼. 삶이란 시간 속에서 변화입니다. 어제의 나는 죽고 오늘의 나로 우리는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납니다. 죽고 부활하고 죽고 부활하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입니다. 죽음이란 변화이며, 우리의 삶은 조그만 죽음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단지 변화할 뿐입니다.


'나도 죽는다'는 관계에 대한 견해입니다. 나는 나의 죽음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만 합니다. 난 그들과 더는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합니다.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하는 후회 중 가장 많은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 좀 더 잘하지 못한 것이라 합니다. 나는 그런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꿈속에서 저승사자를 만났습니다. 저승사자는 자기가 무섭지 않으냐 물었습니다. 나는 무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면서 꿈에서 깨었습니다. 순간 살았구나,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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