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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Apr 01. 2022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여) 좋은 하루 보냈어?

남) 평소와 같았지.

여) 다음 주면 우리 결혼 29주년이야. 우리 행복하잖아, 안 그래?

남) 그래, 우리 괜찮지.

.

남) 난 떠나고 싶어

여) 떠나?

남) 우리도 각자 가야 할 길을 가야 할지도 몰라.

여) 잘해 보려는 의지만 있으면 돼

남) 나한테 그런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어.

여) 29년을 함께 했는데 이렇게 도망칠 수는 없어. 노력을 해야지.

남) 난 노력했어, 29년 동안이나.

여) 어떻게 해야 당신이 행복할까?

      

여)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남)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수 있어.

여) 돌이킬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해 줘. 뭘 해야 할지 알려주면 당신을 위해 할게.  

   

지난 주말에 아내와 함께 광화문에 있는 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아들 하나를 두고 29년을 남편과 함께 살아온 아내는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으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아들을 사이에 두고 부부가 이혼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아내가 믿는 사랑, 남편이 생각하는 사랑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아들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끝났고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홀은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나의 견해는 사랑은 감정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며, 의지이고 행동이라고 정리해 왔습니다. 나는 아내의 삶을 존중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도움이 되도록 행동합니다. 이것이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입니다. 그럼 아내는 나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까? 이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않으며,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아내의 느낌은 아내의 몫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떠나겠다는 남편에게 아내가 한 말입니다. 난 이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말은 당신이 나를 영원히(조건이나 대가가 없어도) 사랑할 줄 알았다는 의미보다는, 나(아내)는 당신(남편)을 사랑했는데 어떻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 나는 살아오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더 황당한 것은 “너 엄마 사랑해? “라는 질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럼 당신의 사랑은 대가 없이 어떻게 계속되어질 수 있나요? 내 옆에는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사랑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끔은 아내도 나를 사랑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와 아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나는 가까이 있는 편한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존재이면 됩니다. 

     

우리는 경복궁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오늘 본 영화를 소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가 나에게 총체적 소감을 물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영화 관람객 중 남자가 몇 명인지 혹시 알아? 오직 한 명이었어, 바로 당신 남편. 나는 오늘 내가 좀 괜찮은 남자란 생각이 들었어. 지난 40년 동안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동안 참 잘 살아왔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우린 함께 잘 해낼 거야.” 

    

영화의 엔딩 장면에 아들이 남긴 말이 가슴에 와닿아 여기에 남깁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첫 여성, 나의 온기, 나의 위안, 기쁨을 드리고픈 당신.”

“나의 아버지, 나의 첫 남성, 나의 스승, 나의 심판, 미래의 내 모습”     

“당신들의 고통은 제 고통입니다. 당신들이 영원히 강인하기를 바라는 저를, 당신들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저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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