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와 모닝

by 이재현

그랜저는 지난 12년 동안 내가 타고 다녔던 나의 애마였습니다. 사업하다가 어려워지면 팔 수 있는 것 다 팔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 자동차(자가용)랍니다. 그 녀석은 무던히도 어려운 시절을 나와 함께 했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상징물이었던 셈이죠. 얼마 전 신호대기 중이던 앞차를 뒤에서 받은 사고가 있었는데 수리비 견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근간에 와서 고장이 자주 발생하고, 연료비도 부담스러웠기에 폐차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모닝, 이 친구는 내가 요즘 타고 다니는 차의 이름입니다. 경차라고 부릅니다. 이 친구를 구입하는 과정에는 만만찮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소형차는 타야지 경차를 어떻게 타고 다니냐는 아내를 설득해야 했고, 다음은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을 이해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중형차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당시 조그만 소기업의 일을 보아주고 있었고, 나의 직함은 전무였습니다. 어차피 다운사이징인데 한 계단 내려가나 두 계단 내려가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그럴 바에야 마지막까지 내려가 보자는 것이 내 고집이었고, 또 새로운 모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매우 즐겁습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즐겁고 주차요금 계산할 때도 즐겁습니다.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 ‘가득 이요’를 실로 얼마 만에 외쳐 보았던가! 덩치 큰 차들이 보기엔 귀여운 모양 입이다. 앞으로 끼어들기를 허락받는 호강까지 누립니다. 지난밤에 눈이 많이 내렸기에 차에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차 앞에 선 순간 난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소매로 콧물 훔치듯이 한쪽 팔로 쓱 문지르니 끝이네요. 이제는 차를 직접 닦으면서 맨 처음 차를 갖게 되었을 때 아침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닦던 그 시절의 기분을 맞보곤 합니다. 요즘엔 아내가 차를 많이 사용하는데, 올해 우리가 가장 잘한 일이 모닝으로 차를 바꾼 것이라네요. 내가 느꼈던 것을 아내도 느끼는 모양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그 자리엔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옛것이 자리하고 있을 시에는 전혀 상상도 못 해본 그런 것입니다. 새로 얻어진 것들의 가치는 옛것이 없어져야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여겼던 나의 위선과 체면은 그랜저와 함께 떠났고, 난 대신 자유를 얻었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한동안은 주차할 시에 왼쪽 발을 들었다 놉니다(foot brake). 아직도 내 몸은 자기가 타는 차가 그랜저인 줄 아는 모양입니다.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요. 지난달에는 친구 종인이도 중형차를 팔고 경차로 바꾸었습니다. 경차 타고 다니는 내 모습에 그도 아마 용기를 낸나 봅니다. (윗글은 2008년에 쓴 글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날 총회에 갔습니다. 총회가 열리는 건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습니다.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모두 고급 승용차였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이 타고 온 차입니다. 소형차를 타고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습니다. 총회가 마쳤지만 바로 주차장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목사들이 다 돌아가기를. 돌아오는 내내 후회하였습니다. 소형차 타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한 자신이 더 창피했습니다. 소위 목회를 한다는 내가.”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강의차 지방에 있는 어느 학교에 갔습니다. 건물 입구 가까이 주차하려다 차를 돌렸습니다. 강사가 경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을 관계자가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였습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내가 아닌데. 내 직함이 내가 아닌데. 그것이 나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것에 갇혔고 그것은 나의 감옥이 되었습니다. 책 <강의>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20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몸은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그분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인이었습니다. 나의 몸은 밖에 있었지만 나는 정신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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