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 후 더 좋은 아빠가 되다

by 이재현

2007년 9월, SBS 스페셜 다큐, '남성 보고서 - 男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은퇴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가정 내 역할 재정립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나간 후 여성들을 위한 월간지 레몬트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다음은 레몬트리 2008년 5월호에 '선배 부부에게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Couple Data

남편 Says

“아내는 1남 1녀의 막내딸로 자라서 받는 게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에요. 아직까지도 집안일하는 것에 익숙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 전부터는 제가 집안일을 전적으로 맡아하고 있어요. 대신 아내는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고 말도 잘해서, 항상 아내와 대화하는 게 즐거워요. 독서량도 워낙 많아서 주제가 폭넓지요.”


아내 Says

“남편은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을 잘하는 독설가였는데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초반에는 아이가 아빠의 직업을 ‘골프선수’라고 할 정도로 가정일에 신경을 못 썼어요. 하지만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줄 알고, 아주 천천히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을 높이 사요. 지금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아주 작은 문제까지 관장할 정도로 아이들 교육에 열심이에요.”


Couple Story

대학 졸업반 때 축제 파트너였던 두 사람은 2년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 남편 직장이 있던 울산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내도 울산으로 직장을 옮겨 맞벌이 생활을 시작했다. 시부모는 충남 공주에서 따로 살고 계셨고, 결혼 4년 차에 첫딸이, 연년생으로 아들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친정어머니가 울산으로 와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은 직장을 관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서울의 외고 진학을 희망해서 엄마는 아이들만 데리고 서울로 거처를 옮겼고,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남편이 울산에서 사업체를 운영했지만 경제사정은 계속 좋지 않았고,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은 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1년 동안 미룰 정도로 힘들어졌다. 아이들을 유학 보내기 위해 아내는 녹즙 배달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보험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2년 전 딸과 아들을 동시에 미국대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남편은 1년 전 아내가 있는 서울로 거처를 완전히 옮기고 리더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생계는 부부의 공동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

이재현 씨가 처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아내 이미경 씨는 남편을 원망하는 대신 융의 심리학 책을 건넸다.

“시간이 너무 남더라고요. 아내가 그렇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책이 술술 읽혔어요. 그러다 서점에서 우연히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지음/열음사)이라는 정신분석학 책을 발견했는데, 몹시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그 책 덕분에 당시의 힘든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됐고,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공대 출신인 남편은 원래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었다고.

“남편이 소파에 누워서 TV 채널을 돌리고 있으면 정말 보기 싫어서 미쳐버리겠더라고요. 근데 사업실패 이후 책을 파고들면서부터 육아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본인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시점이 변화의 싹이 트는 시기였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남편은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남편은 아이들과 4년 동안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과 검도를 갔다가 20년 전에 샀던 영어 테이프 세트로 함께 영어공부를 했다. 새로 읽은 책을 주제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2~3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여러 번. 부모의 열성 덕분인지,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공부에 소질을 보여서 서울의 외고로 진학하게 됐다. 남편은 울산에 남겨두고 아이들과 서울로 거처를 옮긴 아내는 다시는 돈 안 벌겠다고 선언하고 교편을 놨다. 아내의 월급으로 남편이 생활비를 안 줘도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가던 가족은 상경 2년 만에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맞게 된다.

“남편이 계속해서 생활비를 안 주는, 아니 못 주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 진학을 1년 미룰 정도까지 되니까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만들 수 있냐며, 던지고 부수면서 피 터지게 싸웠죠.”


너무 심하게 싸운 어느 날은 아들이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딸도 도대체 왜 같이 사냐고, 그냥 이혼하라고 할 정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빠 없이 혼자 아이 키우는 엄마도 있는데,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이들과 살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하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가족의 생계는 남편 혼자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망도 더 커졌던 것 같더라고요.”


이젠 안 되겠다 싶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나서봐도 나이가 걸려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녹즙 배달원.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내가 엄마라는 생각밖에, 아이들을 어떻게든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남편도 애들도 한 번씩 녹즙 배달을 같이해 보면서 서로 마음을 가다듬었던 그 시기가 우리 가족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됐어요.”


6개월 후 아내는 보험 컨설턴트 일을 시작했고, 처음 5~6개월은 사회적 위치 변경을 해야 하는 아픔, 정신적 갈등 때문에 세 번이나 심하게 앓았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따지기도 했다.

“아내와 심하게 싸우고 나면 다시는 서울에 안 가리라 다짐하면서 울산으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매번 주말이 되면 ‘피해서는 안돼, 피해서는 안돼’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시 가족을 찾아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때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던 아내에게는 제가 필요했으니까요.”


객관적으로는 아이들을 유학 보낼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아니었지만 일단 한번 도전해보자고, 온 가족이 한 팀이 돼서 굳은 결의를 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생 끝에 연년생 아이 둘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고, 다 같이 모든 노력을 다해서 2년째 이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을 해내고 있어요. 그 모든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성취이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공고하게 엮어주는 끈이 됐던 것 같아요.”


후배 부부에게 주는 충고

부부 Say

“부부는 서로에게 선생님이다. 다른 관계에서는 내 안에 무슨 상처가 있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가깝기 때문에 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제까지 튀어나오는 것.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니 결국 내 문제더라. 배우자가 있기에 진짜 나의 내면을 자꾸 마주하게 되고,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남편 Says

“며느리와 시댁 식구들 사이가 꼭 좋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사람이 살다 보면 서로 사이가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지 않은가.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 사람의 일이지 남편이 나서서 억지 화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아내가 시댁에 가기 싫다고 하면 혼자 가도 좋다. 집에서 타박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말을 옮겨서 둘 관계까지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내 Says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친정어머니와 15년 가까이 함께 살았는데, 그 긴 세월을 남편과 어머니가 데면데면 지내더라. 그래도 두 사람이 부딪힐 때 항상 남편 편을 들었다. 모녀간은 워낙 단단한 사이라 어머니가 서운해하셔도 그때뿐이다. 1년 전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는데 그때 남편이 한 달 동안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다. 그제야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앙금이 완전히 풀리신 눈치다.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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