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생각하며

by 이재현

3월 24일은 딸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그리고 오늘(29일)은 딸의 생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딸을 생각하며 딸과 주고받았던 글을 정리해 봅니다.


2004년 4월 3일, 고등학교 3학년 딸에게 쓴 편지인데, 얼마 전에 딸이 남기고 간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습니다.

안녕!

상쾌한 아침이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나에게 넌 언제나 기쁨이다. 네가 무엇이어서가 아니고 그냥 너이기 때문이다. 좀 더 높이 날아보겠다고 힘들게 날개 짓 하는 너를 보면 한편 마음이 아프지만 난 그냥 바라만 볼뿐이다.

난 너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목표가 없는 데 있다.” 넌 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너의 목표는 좀 더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네 앞 가까이 있는 목표에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거라.

힘찬 너의 날개 짓이 너무 아름답다. 네가 자랑스럽다.

아빠가.


딸은 자신의 꿈을 가지고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부모의 지원이 넉넉지 않은 어려운 환경에서 도 열심히 하여 3년 반에 조기졸업을 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그곳의 경제가 좋지 않아 취업이 어려웠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딸은 뉴욕에 있는 조그만 회사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랬었답니다. 불법체류자가 되드라도 그곳에서 살아남으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 모진 아버지였습니다. 2011년 12월 31일 뉴욕에 있는 딸로부터 받은 손편지입니다.


아빠,

아빠에게 편지를 쓰려던 참에 우연히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Extremely loud & Incredibley close”라는 영화예요. 9/11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예요. 눈물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보는 내내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어요. 마지막에는 짠한 감동도 있었고요. 아빠도 기회가 되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소년이 말해요. “아빠는 한 번도 나를 어린아이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자라는 동안 엄마 아빠가 저희를 얼마나 존중해주셨는지,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 주셨는지,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넌 몰라도 돼”라는 말 대신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참을성 있게 대화를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 같고, 저도 나중에 제 아이에게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영화에서 그려지는 아버지의 모습 중에 아빠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어떤 문제를 던져주고는 제 힘으로 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답보다는 원리와 과정을 중시하는 것. 미술 수행평가를 할 때에도 같이 만들면서 밤을 새긴 해도 절대 그냥 해주는 법 없고. 용돈도 금전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혼자서 집 나가 여행하고 오라 하고. 같이 강원도 여행을 하기도 하고. 외국에서 한번 살아본 적도 없는 딸을 훌쩍 미국으로 유학 보내버리고는 들어오지 말라 하시고. 지금에서 돌아보니 ‘아, 아빠가 나를 훈련시키셨구나’ 하는 것을 알지 그 당시에는 사실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하라니까 했지. 그래도 나 참 착하고 말 잘 듣는 딸인가 봐요. 아빠가 시키는 대로 반항 안 하고 했잖아요.

아빠와의 추억이 참 많아요. 행복했던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죠. 휴대폰 때문에 지겹도록 싸운 일, 통 넓은 바지 입었다가 아빠가 계룡산에서 화내고 바지 던져 버린 일, 싸우고 한 달 동안 말도 안 한 일, 상처 주는 말 주고받은 적도 많고요. 제가 아빠에게 서운한 부분은 항상 그거였어요. 아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일이 하나 터졌다 하면 그 부분을 끄집어내는 것이요. 휴대폰 때문에 말을 안 듣는다고, 바지 때문에 멋대로 행동한다고, 혹은 예전에 이러이러한 잘못을 했으니까 지금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등등. 그래도 1) 저도 못지않게 아빠 속 많이 썩였고, 2)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고, 3) 좋은 추억이 더 많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그래도 아빠 앞에선 약해진다는 거예요. 친구들이 얼마나 놀리는데요.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엄청 퉁명스럽고 차갑게 받다가도 아빠랑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 톤이 높아진대요. “아~빠~~” 이렇게요. 목소리만 듣고도 제가 아빠하고 통화하는지 엄마랑 통화하는지 친구들은 알아요.(이 부분은 항상 엄마에게 죄송해요~)

제가 가장 신뢰하고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빠의 말이라는 것. 제가 첫째라서 그런지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것이 싫어 어릴 적에는 아빠 엄마에게 제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했어요. 씩씩하고 잘난 척하는 모습 뒤에 겁 많고 자신감 없는 모습이 행여 보일까 두려워서요. 요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돌아갈 곳은 엄마 아빠 품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돼요. 나를 가장 이해해주고, 걱정해 주고, 관심 가져 주고,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겠고, 비록 떨어져 있기는 해도 엄마 아빠가 계시다는 사실이 항상 든든해요. 그래서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씩씩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감사해요 아빠.

아, 한 가지 더 제가 행운아라고 느끼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제가 어디 가서 아빠 이야기를 할 때에 한 번도 자랑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집이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신기하게 아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거나 피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누군가가 아빠 이야기를 물어보면 괜스레 든든해져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게 돼요. ‘우리 아빠는요, 이렇고요, 우리 아빠는요 저렇고요’ 하면 거요. 모두 멋진 아빠를 두었다며 부러워하죠.

2012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후회 없이 기억될 멋진 한 해가 되길 바라고, 우리 네 식구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편지가 늦어서 죄송하고, 사랑해요 아빠~~

뉴욕에서 딸 현경 올림 (12. 31. 2011)


내가 살아오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것입니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 밤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딸이 심리적으로 내 곁을 떠나간다는 서운함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018년 3월 24일 딸의 결혼 피로연에서 한 말입니다.


오늘은 내게 매우 슬픈 날입니다. 30년 전 현경이가 내게로 온 이후 현경인 나에게 너무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현경인 나의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런 현경일 다른 남자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오늘은 내게 매우 기쁜 날입니다. 현경이가 잘 자라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멋진 사람과 함께 더 높이 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부모인 제게는 무척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네가 내 딸로 와 주어서 고맙고,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너와 함께 동안 아빠를 많이 철들게 해 주어 고맙고, 특히 이렇게 멋진 남자를 만나서 고맙다고.

나는 믿습니다. 현경이가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던 것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지난 연말에 딸과 사위가 결혼 후 처음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한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이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최근에 딸아이가 자신의 facebook에 올린 글입니다.


아빠가 최근에 <내 인생의 첫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 글을 많이 쓰셨길래 브런치에 연재해 보시면 어떻겠냐고 제안드렸다.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드렸는데 작가 신청을 하시더니 단번에 승인! 어떤 사람들은 재수, 3수도 한다던데 본인은 한 번에 통과했다며 으쓱하신다.

<나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내는 신문을 본다>가 아빠 글들의 메인 주제다. 우리 집은 엄마가 경제 활동을 하시고 아빠가 살림을 하신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래되었다.

엄마는 아빠 글이 공유되는 것에 걱정이 많으셨다. 굳이 남이 몰라도 되는 우리 가족의 상황, 힘들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들추어내야 할 수도 있어서다. 나도 사실 그런 마음이 조금 있다.

근데 그럼 좀 어때!! 아빠 하고 싶은 것 다 해! 아빠의 글을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많이 구독(또는 라이크) 해주세요!!
https://brunch.co.kr/magazine/superdaddy "


이젠 나에게 딸은 믿음직한 친구이며,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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