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버지란
나는 참으로 행운아다. 다른 친구들이 어렸을 적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잃었을 때, 나는 스물셋이 되어서야 외할머니를 한 분 잃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던 분이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앞으로도 삼십 년 이상은 거뜬히 사실 분들이다. 25년간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부모님은, 건강히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내게 큰 은총이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가/어머니가 내게 어떤 분이었냐고 자문하면, 몇 가지 추상적인 대답만이 머리에서 맴돌 뿐이다. 그 추상적인 대답들을 구체적으로 글로 옮기려 그러면, 복잡한 생각이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서 쉽게 쓸 수가 없다.
최대한 정리해서 한 번 써보자. 우선은 먼저 리퀘스트를 보내신 아버지부터.
예전에 나는 아버지를 ‘등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등대가 배의 갈 길을 비추듯, 아버지는 내가 갈 길을 비춰주셨다. 내 삶에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교육으로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원칙 중심의 삶을 살라고 하셨고, 절벽으로 떨어져야만 날개가 난다고 하셨고, 영웅의 길을 알려 주셨다.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사소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었고, 견디기 힘든 시련 (특히 군대 훈련소)에 직면했을 때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조금 유별난 선택이나 삶을 사는 것에 긍지를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님이다.
이번엔 ‘스승’ 이 아닌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를 보고자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상대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부모보다 더욱 뛰어난 성취를 거두는 것이 효도의 한 방법이라지만, 그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은 남자 대 남자로서 마주한다고. 그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마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게 큰 벽이다. 이미 오래전에 나의 키와 체격은 아버지를 넘어섰지만, 아버지 앞의 나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위축이 된다. 아버지 당신께서도 잘 아시는 일이지만, 나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와는 툭 터놓고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면 ‘또 내게 무슨 잔소리를 하려 그러시나’라는 생각에 자동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눈치만 보게 된다. 과장을 아주 살짝 섞자면, 법정에 비유했을 때 아버지는 판사고 나는 피고인이다. 그나마 최근 1~2년간 아버지를 보는 내 시각이 굉장히 많이 편해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내게 부담스럽다.
사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억울하실 수도 있다. 아들의 입장으로 봤을 때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에 비해 굉장히 관대한 편이었다.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서는 나와 이현경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셨고, 체벌보다는 대화로 해결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최근 나는 아프리카의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신경질을 내고, 무심결에 회초리를 쓰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육체적인 체벌 거의 없이 나와 이현경을 상대로 끊임없이 대화로 해결하려 노력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만 더욱 커져갈 뿐이다. 그런데도 아들이 아직도 자신과 대화를 불편하게 여기신다는 것이 결코 좋으실 리 없다.
결국 나는 답을 하나 유추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너무 대단한 거다. 아들로서 아버지께 갖는 존경심을 차치하고서라도, 남자 대 남자로 봐도 아버지껜 흠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성격적인 결함이나 기타 부분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결국 아버지란 사람의 대단함과 나 자신의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아직도 아버지를 멀도록 느끼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잘 알고 있다. 나 자신이 노력하면 된다. 나의 부끄러움은 나의 결함보다도 그러한 결함을 고치려고 하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 나태함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결점은 누구나 있다. 그러나 결점을 고치려 하지 않는 나태함은 용납될 수 없다. 내가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한 이후에야 나는 아버지를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글의 요지 중 많은 부분은 본 글을 작성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왜 아버지가 그리도 나보고 생각을 글로 옮기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201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