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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an 30. 2021

80퍼센트로 충분하다.

한 주 내내 우편으로 온 건강검진결과서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했다.

분명 더 큰 병이 되기 전에 발견되어 다행이었지만 나는 안심하지 못했다. 조직검사결과지에 적힌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애써 검색해가며 온갖 불안에 휩싸였다. 이미 한 차례 큰 수술 경험이 있는 나는 얻어낸 정보 중 최악의 가능성들만 골라 받아들였다. 머릿속에는 절로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전개됐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는 마음은 커져갔다. 성적표처럼 받아 든 검진 결과에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평소 삶이 힘들다고,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삶 자체는 고통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내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삶에 대한 집착이 일어났다. 과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일까, 죽음으로 가는 고통의 과정일까, 혹은 남은 자에 대한 걱정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며칠 동안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뜻밖에도 나의 이런 생각을 멈추게 한 것은 딸아이의 방에 붙여진 한 장의 엽서였다. 재작년 관광객이 북적이던 여행지에서 산 엽서에는 그 여름날 오후의 생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아래,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붉은 벽돌색의 돔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속에는 그날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가득 늘어진 엽서들 앞에서 설레는 표정으로 고민하던 딸아이, 뜨거운 태양 아래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사람들, 놀라움과 감탄으로 빛과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까지... 모두 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 속에서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눈이 부셨지만 숨을 쉴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맞다. 이번 일은 불행이 아니라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잖아’가 아니라 그냥 괜찮은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이미 일어난 결과는 접어두고, 지금 이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나는 몇 년 전 읽었던 건강 관련 책들을 다시 읽었다.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차곡차곡 메모를 해가며 음식과 습관, 운동법 등을 정리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건강의 비결은 현미채식이나 저탄고지가 아니라 마음의 면역력이었다. 건강을 위해 중요한 세 가지인 수면과 스트레스, 운동 역시 모두 마음의 근육과 관련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생활습관이 엉망이고 마음이 우울하면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김승호의 <돈의 속성>이라는 책에는 ‘두량족난복팔분(頭凉足煖腹八分)’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불교 선가 스님들 사이에서 전래되는 생활규범으로 머리는 시원하고 발은 따뜻하게, 배는 가득 채우지 말고 조금 부족한 듯 80%만 채우라는 말이다. 그는 이를 투자에 비유했다. 100분의 1초짜리 전자시계를 가지고 가장 높은 숫자에 정지시키려다 100을 넘기기 쉬운 것처럼, 투자도 100%가 지나면 0%가 될 수 있기에 결국 80%면 가장 높은 점수라고 말한다.


나는 마음에도 이런 복팔분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하나둘씩 쌓인 불편한 감정들. 어느 날은 풀지 못한 억울함에 분노했고, 어느 날은 철없는 행동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아 괴로웠다. 나는 내가 그것들을 모두 비워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간에는 좋은 감정들로만 100% 채워져야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용서도 사과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난날을 되돌릴 수 없음을 한탄했다. 마음은 늘 힘들었고 상처뿐인 20%의 세상만 바라보며 삶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80%만으로 충분하기로 했다.

내 안에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 미워하는 감정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 많이 남아 있을 테니까.

조금 억울해도 괜찮다. 어쩌면 나만 억울한 건 아닌지도 모르니까.

잘못한 모든 일에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사람도 이미 나처럼 용서했을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소중한 사이라도 그렇게 80%의 좋은 감정만 갖고 살아가기로 했다. 매일 아침 공원을 돌며 지워지는 감정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감정 역시 억지로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부족한 듯 살아가는 거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내 삶을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해주는 건 내가 늘 보지 못하는 80%에 있음이 분명하니까.







Image thanks to unsplash

@esdesignis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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