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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꽝쾅쿵 Apr 04. 202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짧은 다짐문 혹은 반성문

 작년 5월 초에 『우리는 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가』라는 글을 쓴 뒤 거의 1년 만이다. 바빠서 그런 거라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될 것이며 다른 일, 특히 게임을 하느라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지프 신화』 이후로 책을 안 읽은 것도 아니었으며, 책을 계속 읽으려고 시도는 해봤었다. 대표적으로는 카뮈의 『이방인』, 『작가 일기』, 들뢰즈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쇼펜하우어의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칼 야스퍼스의 『철학』 등등을 읽으려고 시도를 해봤던 것 같다. 저 중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도 있고 읽으려고 시도해봤던 책도 있고 처음으로 읽어보는 책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저들의 공통점은 바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만약 저 책들이 나에게 있어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힐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근 1년 만에 글을 쓰지도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1년이 다 되었어도 다행히 나는 어쨌든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책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그 때문에 저 책들을 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글을 쓰는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계속 읽어야 하며 그에 따라 글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계속해서 하는 것인지, 게임을 하다가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그러한 의무감, (이게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가 문득 떠올라서 써본다.) 부채의식이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인지 나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 같다.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어서 다음의 이유들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단순하게도 책을 읽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재밌다. 아무리 게임이 재밌어도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의 재미는 나에게 있어 충분히 비교 가능하다. 또한, 이것은 어찌 보면 매우 실용주의적인 측면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책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나의 일상생활에 있어 도움이 될 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슬프게도, 지적 허영심 또한 큰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많다. 사소하게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나 게임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고, 뉴스에서 전해 듣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보면 그러하다. 어쩔 때는 그들이 나의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을 하여 놀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행동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놀랄 때가 많다.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다던지 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자신이 물질적 이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동안 자신이 일관적으로 보여왔던 행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악행을 저지른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궁금한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나 악행을 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을 버릴 때에, 그 사람이 과연 그것을 인식조차 할까 하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만의 생각철학, 사상, 신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져버린다고 자인하거나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하여 죄책감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아서 서슴지 않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보다는 억만 배 더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자신만의 철학,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그러한 행동을 할 확률은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격언을 들이밀며 나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만의 철학, 사상을 갖고 있는 이라면 그 사람은 자신의 철학이나 사상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철학과 사상,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도 있게 된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생각, 신념, 사상,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내 자신이 이 세상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구체적으로는 바람직하고, 고결하게, 남한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생각이,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견고하기를 원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기도 하며,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재확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혼자만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사회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그것이 이 세상이 더욱 살기 좋아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내 기준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철학, 아니면 적어도 인문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 아니지만(아니 오히려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이 맞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이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해 주길, 적어도 작은 호기심이나 생각의 계기, 책을 읽거나 검색을 해볼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며 가장 사소하게는 과제를 할 때에, 다른 책을 읽을 때 미약한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란다.(무반성적으로 과제를 위해 긁어가는 건 정중히 사양한다. 제발.)

천착(穿鑿), (<촛불을 바라보는 마리아 막달레나>, 조르주 드 라 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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