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디오 Dec 20. 2024

정신건강의학과 방문기

치과의사란 항상 정신이 위태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신경 쓸 것과 책임질 것들,

그리고 달리는 체력을 그대로 두면 언제나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정신에 타격을 준다.

나는 가냘픈(?) 체구와 모자란 체력으로 일생을 살며 정신력으로 버텨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 감기가 걸렸을 때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지만,

마음이 힘들 때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기 싫었다.

정신이 나약해졌다는 뜻 같아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덧 세 번째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였다.

첫 번째 때는 연예인처럼 마스크를 끼고 누가 나를 알아볼까 걱정하며 다녀왔다.

두 번째 때는 누가 나를 알아볼까 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세 번째 때는 지인을 만난다면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할 용의도 있었다.

이렇게 점점 정신건강의학과가 편해졌다.


이것은 다녀올 때마다 뭔가 효과를 보았고, 정신력 운운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플 때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녀오는 것이 합리적이니까.


이번 방문은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되어 다녀왔다.

살면서 만나지 말아야 할 부류의 인간들이 요즘 부쩍 나를 스쳐갔다.

한 번의 재수 없음이 지나가고 멘털이 다시 회복되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한 여섯 번째 재수땡이가 줄지어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가진 것이 더 많으니까, 내가 더 인격자니까,,, 참고 참았던 것이 이제는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인류애가 바사삭 부서지고, 이 고통이 계속 반복될 까봐 불안했다.


이 인간들아. 나도 한계가 있다고... 니들 서로 아는 사이지? 나 괴롭히려고 서로 짰지?

다음에 또 다른 재수땡이 데리고 오려고 준비 중이지?

불안... 불안...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정신과 선생님께서는 내 얘기를 찬찬히 들으시더니,


"우리 치과 선생님이 그동안 편하게 살아오셨나 봐.
우리 직업 하면 그런 사람들 늘 상대해야 하지."


으잉? 별일 아닌데 내가 심각한 건가? 순간 내가 철없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번에 예방주사 꽁 맞았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그런 사람들 만나면 대응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일들은 그냥 해프닝 같은 거라고.


"그 사람들 문제지 치과 선생님 문제 아니니까 앞으로 또 열심히 진료하면 돼요"


별일 아닌 건가 봐.

그래.. 시간이 필요할 뿐 별일 아니야.

다시 볼 사람들 아니잖아.

올해와 내년까지 만날 진상들을 모조리 만난 기분이라 내년에는 오히려 좀 편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 반응을 보니, 내 멘털은 이상이 없는 것 같다.

그럼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