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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Nov 28. 2023

목욕탕의 그 아이

목욕을 하고 나와서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있자니 목욕탕 다른 공간에 있는 중년 여성의 짜증썩인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머리가 왜 이렇게 기냐?"  "말도 지지리도 안듣고 머리 좀 자르면 되겠구만..... " 그 여성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팬티만 입은 작은 여자 아이가 그 여성의 앞에 긴 머리를 앞으로 떨어뜨린 채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 중년의 여성은 그 여자아이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는 듯 하더니 수건을 주며 직접 닦게 했다.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작은 여자 아이는 울어서인지 코를 훌쩍거렸고, 그 소리가 듣기 싫은 그 여자분은 여자 아이에게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와 코를 풀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아이는 화장실 문을 열고 휴지를 뜯어서 겨우 코를 푸는데 여성의 짜증썩인 고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화장실 문 닫아"  

 여자 아이가 알미늄 화장실 문으로 다가가 삐걱거리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 작은 여자 아이는 말도  못하고 주눅으 든 채 할머니의 짜증을 감당하고 있었다.

할머니인듯한 그 중년 여성이 그 여자아이에게 이제는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라고 고음으로 소리를 쳤다.  아이는 한쪽으로 가서 연신 머리를 수건으로 닦다가 선풍기가 있는 내쪽으로 왔다.

나는 작은 소리로 그 여자아이에게 손짓으로 내 앞에 있는 선풍기앞에 서게 했다.

그 여자 아이 얼굴을 보니 동그란 얼굴에 볼이 통통하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얼굴인데 눈물이 흘러 속눈썹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여자아이가 가져온 수건으로 눈물을 꼭꼭 찍어 닦아주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아이의 감정에 동화되어서 혼이 나는 아이처럼 소리죽어 조용히 움직였다.

그 여자아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흐트리면서 말리려고 애를 썼는데 길다란 검은 머리카락이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옆에 드라이기가 있었는데 내게는 동전이 없어 드라이기를 사용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머리가 덜 마른채 가면 여자아이의 할머니가 또 화를 낼 것 같아 열심히 말리려고 애를 썼으나 선풍기에 아무리 말려도 머리가 마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더니 할머니인 듯한 여자분이 이제 오라고 했다.  다시 할머니인듯한 여성분에게 간 그 아이는 시키는 대로 말없이 팬티 위에 외출복을 입었다.  그런데  밖은 초겨울 날씨라 많이 추운데 팬티위에 외출복이 전부였다.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짜증을 들으며 한 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그렇게 주눅이 든 채 소리죽여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 여자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줄곳 그렇게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사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여자아이의 보호자인듯한 그 중년의 여성분은 시종일관 아이의 긴머리를 탓하고,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음을 탓하고, 그리고 코를 시원하게 풀지 않음을 탓하며 짜증을 내고 있었고 말이 없이 그런 상황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 여자아의 주눅든 모습에서 나는 내 딸들의 모습을 언뜻 본 듯 하다.

바쁜 출근길 떼를 쓰며 옷트집을 하는 딸아이 때문에 나는 바쁜 출근길에 발을 동동 굴렀고, 조급한 마음에 말을 듣지 않던 나의 소중한 딸아이를 어느 때는 손찌검을 하기도 했었다.  악악거리며 떼를 쓰다가 나에게 맞은 딸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의 힘에 굴복하고 울면서 이모집에 가곤 했다. 그나마 나의 딸아이는 소리내어 울기라도 하지 그 아이는 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만 떨구었었다.

 그렇게 딸아이에게 손찌검하고 출근한 날의 내 마음은 돌 덩어리를 얹어놓은 것마냥 무겁고 내 삶이 힘겨워 긴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났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사랑을 받으며 살기에도 아까운 딸아이를 때려가면서 얼마나 큰 돈을 번다고 그러고 사는지... 힘겨웠었다.

그런데 한 편 생각해보면 예전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견뎌오신 나의 부모님들은 어찌 나를 키우셨는지 모르겠으나 내 마음에 그늘만 지지는 않았다.  

 어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계절에 엄마의 무릎을 배고 누워서 엄마와 옆집 아주머니가 간간이 웃음썩인 담소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낮잠을 잔 기억이 있으며 이 따스한 기억은 오십 넘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속눈썹이 촉촉히 젖어 울던 그 작은 아이가 할머니의 짜증 썩인 목소리는 먼지처럼 날려버리고 어느 햇살 따스한 날의 빛나는 추억만 가슴에 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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