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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한 제제 Mar 16. 2024

안티프레질(Anti-fragile)

'자기만의 시간'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이유

오늘도 '너덜너덜' 퇴근합니다.


퇴근길 카톡이 울린다. P팀장님의 문자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녹록지 않았을 하루가 묵직하게 담겨 있다.


P팀장님은 최근 새로 팀장직을 맡은 분이다. 부서원들을 관리하고, 전면에 나서 책임을 맡고 타 부서와의 이견을 조율하면서 고달픈 하루가 이어졌으리라.


사회생활과 개인적 삶을 이어나가며 우리는 우리를 시험 들게 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된다. 상사에게 받는 오해, 동료와의 의견 충돌, 그리고 맘대로 되지 않는 일과 성과에 대한 과중한 부담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나도 처음 선임이 되고 꽤 오랫동안 중압감에 허덕이며 매일 출퇴근길에 도망칠 궁리만 했던 거 같다.  

'사라지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압박과 스트레스를 잘도 이겨내는데 나는 왜 이토록 나약하기만 한 걸까'란 생각에 좌절감만 이어졌다. 그럼에도 일을 멈추지 못했던 것은 내가 정말 절박한 '생계형 직장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멀리 보지 않고 하루씩만 버티는 것이었다.


"대충 해! 열심히 해봤자 알아주지도 않아!"


그 당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지인들이 건네던 위로였다.

남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더라도 과도하게 책임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나의 미련함에 가족들도 답답해했다. 혹자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 큰 것인지를 묻기도 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과정이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그저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이 조직의 폐해를 끼칠까 걱정하던 강박증 환자였다. 내 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대단해 보였기에 남 탓을 할 수도 없었고, 남들은 같은 상황에서 훨씬 더 잘 해낼 거란 생각에 상황 탓을 할 수도 없었다. 너무 미련한 나였기에 최선을 다해 책임을 완수하는 것 외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이 주어질 때마다 근본부터 다시 공부하고 나약한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거 같다.



안티프레질(Anti-fragile)


'안티프레질(Anti-fragile)'이란 말이 있다. 안티프레질이란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가 그의 저서 "Antifragile: Things That Gain from Disorder"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한 개념으로, '부서지기 쉬운'을 뜻하는 프래질(fragile)의 반대 상태를 말한다. 이는 혼돈과 불확실성, 스트레스와 같은 충격에 직면했을 때, 단순히 견디는 것을 넘어 그로 인해 이익을 얻고, 성장하며, 실제로 더욱 강해지는 능력을 가리킨다.


프래질(fragile)이  '절대적 안정'만 고수하는 데 비해, 아티프레질 안정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도전에서 발전의 기회를 찾는 시스템이나 개인의 특성으로, 탈레브에 따르면, 혼동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충격은 우리들에게 필수적인 스트레스를 제공하고, '감수할 수 있는 실패를 자주함으로써, 결국 우리는 더욱 발전하고 완성될 것'이라고 한다.


나심 탈레브의 Anti-fragile (source: My 12 Biggest Key Investing Takeaways from “Antifragile” by Nassim Tal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탈레브는 시스템이나 개체가 겪는 충격(스트레스)은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라고 주장했다. 안티프레질적 사고를 기반으로 단기적으로 '고통'으로만 보이는 것들을 선택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결국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반면, 절대 안정만 추구하는 프레질(fragile)적 사고에 머물러, 단기적 이득을 추구하다 보면, 인고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시험하고 성장해 본 적이 없기에 결국, 예상치 못한 충격이나 변화에 쉽게 무너지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안티프레질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기술적 시스템에까지 적용되는 범용적인 개념으로, 변동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결국, 안티프레질이란 불확실한 세계에서 더욱 강해지고 번영할 수 있는 시스템과 개인의 내재된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난관을 경험하면서 더 강한 버전의 자신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선임 초기 마주했던 고통의 시간 동안, 나는 빛을 바랄 수 없는 긴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메타인지'도 안되고 '성숙함'도 없었기에 자기 연민에 빠지기 일쑤였다(물론,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경제상황의 도움으로(?)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니, 이제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두려워하지 말고 해 보자'는 생각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도무지 풀 수 없는 난제에 대해서도 '어딘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직 그 방법을 못 찾았을 뿐'이란 여유도 생겼다. 여전히 업무나 새로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중압감은 크지만 수많은 실패를 통해 사회생활뿐 아니라 개인적 삶에서도 이전보다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역치'도 높아졌다.  



자기만의 시간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이유


원치 않는 상황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놓이게 되는 것이 삶이겠지만,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성실히 대응해 나간다면(잘 극복하거나 실패해도 그 안에서 배움을 이어간다면), 결국,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거 같다. '안티프레질의 관점에서 우리가 겪는 다양한 삶의 고통은, 결국, 찬란한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줄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관점만 있다면 말이다.


결국 삶에 정답은 없고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책임감이 높고 현명한 P팀장님이 자기에게 주어진 '긴 인고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회피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더 어려운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역치'를 높여 나가길 마음속으로 응원해 본다.  




By 단호하고 싶은 제제


- 도전을 계속하며 피 터지게 하루를 살고 있을 밀레니얼을 응원하고

- 중년의 책임에 지친 X세대에 공감하고

- 묵묵함과 우직함으로 이끌어주신 모든 선배님을 존경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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