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지나자 뒤집혀버린 '채용 합격'
분명 경북 봉화에 있는 대안학교에서는 나의 꿈을 모두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었다. 내가 제시했던 여러 조건들을 대표님께서는 받아주셨다. 어린이날 연휴가 끝나고,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말에 나는 마음이 들떴다. 그저 이곳에 정착해 사회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이타심의 결핍'과 '자연의 몰이해'라는 문제를 풀어가며 함께 살아가게 될 거라며 부푼 꿈을 꾸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임시채용 재검토'. 그 메시지를 받고 나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마음에 휘영청 거렸다. 이러저러한 마음들이 계속해서 떠올라 명상을 하기도 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너무 많은 마음들을 알아차리고 싶었고, 그 안에서 평정을 찾고 싶었다.
시간이 되어 찾아가 나눈 이야기들 속에는 '산님의 사진이나 영상 퀄리티에는 문제가 없어요', '적극적으로 해주시는 모습도 너무 좋고, 함께 같이 하게 됐을 때 얻게 되는 퍼머컬처적 접근이나 여러 가지 부분들도 좋게 보이고요. 다만 우리 학교는 커뮤니티에 함께 할 사람보다는 그저 시키는 일을 해주실 직원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님이 저희 커뮤니티를 위해 제안해 주신 여러 마케팅, 브랜딩 제안들을 살펴보니 저희에게 더욱 필요한 건 미디어 마케터라기 보단 마케팅과 브랜딩 전반에 걸친 컨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도 브랜딩과 마케팅을 제대로 해보지 않고서, 제삼자에게 그 모든 것을 맡기고 대외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는 게 좀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아쉽지만... 산님의 퇴소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나와 직접 대면하고, 전략을 짜내고, 수시간을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선생님들과 대표님들은 나와 함께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셨지만, 다른 커뮤니티의 분들은 '지금 함께 커뮤니티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는 점, 스스로 마케팅 브랜딩적 접근을 먼저 해나가는 게 좋겠다는 점' 등을 들어 다른 답안들을 주셨다고 한다.
선생님들의 선택이 불편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운영을 3년동안 어려워했고, 자체적으로 마케팅과 브랜딩을 오랫동안 제대로 해오지 못하셨기 때문에 재정적인 예산도 많지 않으실거라 짐작이 되는 바 군말없이 이러저러한 말씀들을 고분고분 들으며 나왔다.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보다는 나그네에게 계산없이 베푸는 쪽을 선택하셨던 분들이기에 계산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되려 나의 콘텐츠 제작 역량은 잘 봐주시면서 솔직한 말씀들을 해주신 덕분에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드렸던 여러 브랜딩, 마케팅적 제안들을 보시고서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건 나의 제안들이 나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 기회가 될 때 다시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씀도 들었으니 웃으며 나올 수 있었다.
나눠주신 말씀들에 따르면 그러했다. PPT 슬라이드에 담아 여러 제안을 드렸다. 이너 브랜딩과 퍼머컬처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단위 면적당 수익량이 가장 높은 벡엘루앙 농장의 비닐하우스 운영 방법 등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말씀드렸다.
이너브랜딩을 비롯, 로컬 커뮤니티에서 접목시켜 할 수 있을만한 여러 가지 전략들을 다 남겨드리기도 했다. 어떤 것들은 구두로만 남겨드리기도 했지만, 이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성향들을 생각해 볼 때 아낌없이 드리는 게 이 사회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020의 자살률이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을 본다면, 인간과 동식물 등 모든 생명이 함께 잘 살아가길 바란다는 설립자 대표선생님의 뜻 위로 생겨난 이 학교 커뮤니티가 잘되기를 바랐기 때문. 그리하여 많은 생명이 더 살아가게 되거나 행복을 꿈꿀 수 있게 되길 바랐다.
돌아오는 길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과 계속 함께 있어주면서 이 느낌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나의 선택과 진로들이 계속해서 바뀌어나가는 모습이 나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이소룡 선생님의 'Be water my friend'라는 문장의 뜻처럼 '물처럼 이리저리 상황이나 때에 따라 흘러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만의 그 무언가를 계속해서 키워나가지 못하고 휘둘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답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산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생겨나는 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어떤 농가에서는 서둘러 이 방법을 쓸지도 모르지만,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퍼머컬처 농가가 잘되는 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믿는다.) 이번에 경북 봉화 산자락, 동고서저형의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만큼, 오른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경북 봉화의 산에는 닭보다 거위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양계를 하는 곳이지만, 거위를 내가 기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무언가를 지키길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지는지, 주인이나 가족을 꼭 지켜내려는 진돗개 저리 가라 싶은 충직한 성격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산에 거위를 기르고, 퍼머컬처 형태의 수많은 나무와 식물들을 기른다면 한 번에 여러 가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탄탄한 수익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펜스를 두른다거나 먹성 좋은 초식동물인 거위가 심겨놓은 여러 나무들을 다 잡술 거라는 예상들을 한다면 비용들이 만만치 않을 것도 같다. 닭과는 달리 빠르게 소득을 만들어내는 사이클이 생각보다 더딘 편이기도 하니.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거위에 퍼머컬처적 접근을 두어 여러모로 소득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나가 보면 좋겠다는 구상도 해볼 수 있었다. 일단 산부터 구하는 게 일이니 이를 어쩐다. 임업후계자 교육이니 퍼실리테이터 교육이니 노션 '할 일'에 두고서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있는 요즘, 고민해 보게 된다.
그리고 프리랜서적인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서비스나 상품들에 대한 가격 흥정이나 제안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나 스스로도 더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다. 8일을 머물고 받은 것들. 비즈니스 적으로 내가 생존이 가능해야 남들에게도 좋은 이득을 지속가능하게 제공해 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경제적인 부분에서 남들에게 어떻게 더 어필해 나가고, 나의 생존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멘토이시기도 한 대표님께 전화를 드려 안부를 여쭙다 얻은 조언으로는, '아무래도 어디에 산을 사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의 상품 서비스를 얼마에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 가게의 메뉴처럼 명확하게 제공해 주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아무래도 나는 나의 콘텐츠나 서비스, 시간을 너무 헐값에 팔아치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남을 지키기도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단순히 영상이나 사진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기계적인 생산자가 아니라, 특정 존재가 갖고 있는 본질, 그가 하는 일과 브랜드적 핵심을 끄집어내어 콘텐츠를 담아주니 이는 보통의 편집자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 아닐까 싶었다. 컨설팅. 나는 내 브랜드와 콘텐츠로 대기업 스폰도 받아보고 발리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는 데다, 창업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한 회사나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의 입장에서 어떤 식의 접근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 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나의 역량을 다시 살펴보게 됐으니 감사한 경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경험들이 지금은 어렵고 순탄치 않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다 너를 더 네가 원하는 너 자신이 되도록 도와줄 거야. 다 과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시는 한 대표님의 말씀에 감동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수많은 과정들이 다 나를 더 역량 있고, 과거보다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만들어주었으니. 감사했다. 다만 과거의 나와는 달리 '현존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내 마음에 일어나는 수많은 느낌들과 함께 있어주는 방법을 익힌 탓인지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쉽게 사라졌다. 아마 과거에도 수많은 거절을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아 지는 것처럼 내가 더 과거보다 커졌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