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욕
먼저 제 실수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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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4년 전. 저는 중고신입으로 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저와 같은 직무로 들어온 입사동기가 있었는데, A라고 부를게요.
저에겐 세 번째 회사였고, 때문에 회사생활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었어요. 하지만 A는 달랐습니다. A에게는 이 회사가 첫 회사이자, 첫 사회생활이었던 것이죠. 어딘가 각 잡힌 모습의 불안하게 보이던 A...
출근한 지 이튿날, B과장은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를 저희에게 던져주고는 다음날까지 완성해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 업무는 신입 둘이서 할 수 없는 분량이라는 것을. 따라서 대충 A와 상의한 후 퇴근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A는 어떻게든 끝내보겠다고 12시까지 야근을 하더군요. 저는 눈치 좀 보다가 한 8시쯤에 갔습니다. 좀 짜증이 나더군요. 다음날, 예상대로 A 역시 업무를 끝내지 못했고, 그 일은 중요한 업무가 아니어서 그냥저냥 넘어갔습니다.
저는 사실 A와 입사동기이기도 하고, 같은 직무이니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저 날 이후로 서로의 성향이 다른 거 같아 포기하고 다른 동료와 친해졌고, 차차 회사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A에게 그냥 지나가는 말로 회사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더군요. "오늘도 회사에 나오기 싫어서 아침에 토를 했어요." 얼굴도 핼쑥해 보였습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는 일이기도 하니 응원의 의미로 그 친구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우린 B과장 욕을 하면서 친해졌습니다. 저는 A가 마냥 '네네'하며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B과장은 그런 A가 만만해 보였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하지만 A는 알게끔, 꼽을 주며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눈이 뉘엿뉘엿 감기는 한가로운 오후의 사무실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엄마야! 어떡해!". 바로 제 옆자리 A의 비명이었습니다. 절규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A를 쳐다봤고, 모두는 A가 정말로 큰일을 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아무도 선뜻 A에게 말을 걸지 못하더군요. 네, 그만큼 A의 비명은 보통의 회사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정말 희대의 빅딜일 것 같다.' 덩달아 저도 무서워졌지만 옆자리에 앉아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동료로서 사태를 파악하려 A의 모니터에 가까이 갔습니다. 메신저가 켜져 있더군요. 그리고 대화창을 보았습니다. 대화창에는 B과장의 욕이 난무했습니다. 아주 심한 욕이요...(시xx, 개xx, 돌은x, 육시xx. 이 날 A의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나 봅니다.) 문제는 입에도 담지 못할 이 육두문자가 B과장에게 전송된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B과장 욕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A는 친구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를 B과장에게 보낸 것이죠.
맙소사, 저 역시 너무 놀라 이걸 어쩌나 싶더군요. 하나 마냥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일단 상황 파악을 좀 했습니다. 'B과장은 지금 자리에 없다. 회의에 갔다. 회의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시간이 좀 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이거 날려먹은 거야? 괜찮아! 아마 저기에 있을 거야!". B과장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켰습니다. 그 당시 제 머릿속엔 '과장이 이걸 보면 X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욕지거리를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A보단 마음이 덜 초조한 상태였죠. 아무튼 컴퓨터는 잠겨있었고, 어쩌지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려는 찰나에 정신을 차린 A가 제 뒤에 붙어 B과장의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알려주더군요. 설마 비밀번호가 자기 핸드폰 번호를 뒷자리겠어? 타닥타닥. 오, 할렐루야! 뒷자리 맞잖아! 메신저 잠금 비밀번호도 핸드폰 뒷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얼른 메시지 내용을 삭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답니다.
A가 "엄마야! 어떡해!"라고 소리를 지르고, 과장 컴퓨터에서 메시지를 삭제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기까지 약 3분이 걸렸더군요.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이 3분 안에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꺼내보기 싫은 추억담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 상사 욕은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합시다!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으나 안 할 수 없겠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