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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Aug 16. 2022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유치원 물놀이

유치원교사는 유치원 물놀이가 싫다

여름마다 나를 공포에 떨게한건 귀신보다 더 무서운 유치원 물놀이행사였다. 물놀이를 원래 싫어했냐고? 전혀. 바다를 보면 그자리에서 뛰어들어가고, 수영장을 좋아하고 잠영을 몇분이나 하는지 친구와 시합까지 하던 나였다.

그러나 유치원의 물놀이는 상상 그 이상의 중노동이었다. 물놀이가 퇴사 이유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물놀이를 해본 후, 절대 이 일을 4-50대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놀이를 하려면 계획부터 시작해서 회의나 물품들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고, 소지품등을 수합해야 한다. 물놀이 당일에는 미끄러운 바닥과 들뜬 아이들의  격한 몸부림에 사건사고가 나지 않으면 다행. 거기에 가정에 발송할 사진까지 아이들별로 찍어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수십명의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또 친구들과 싸우지 않게, 즐겁게 놀수 있게 하다보면 실수하나쯤 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예민한 학부모님이 한분이라도 컴플레인을 걸어오면 역시 ..유치원교사란 백번 잘해봐야 한번 잘못하면 욕먹는, 밑져야 본전인 일같다고 김이 샌다. (물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지만 꼭 한두명씩은 힘든 분들이 계시기 마련.)


게다가 물놀이가 끝나면 일이 끝일까?

산넘어 산이다. 유아들이 젖은 수영복을 혼자 벗고 새옷을 입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물놀이가 끝나면 내 머리카락이나 몸이 젖은 것은 신경쓸 새도 없다. 아이들의 젖은 옷 갈아입히기부터 시작해서 몸닦아주기, 새옷 입히기를 수십명을 해줘야하고, 점심시간엔 피곤해서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주며 밥까지 먹여 무사히 집에 보내야 한다.


나는 유치원교사를 하며 나라는 사람이 너무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허리가 부러지든 감기에 걸리든 아이들을 위해서 온전히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욕 안먹으면 다행, 아무 보상도 인정도 없고 아이들의 추억속의 한조각으로 남으면 그걸로 족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충분했다면 좀더 버텼겠지만 나는 소진되어버렸다. 그만큼 마음이 튼튼하지 못했던걸까. 하여간 자칫 잘못하면 정말 허리와 영혼과 자존감까지 함께 나가버릴뻔했다.


이쯤되면 왜 굳이 유치원 마당에서 물놀이를 해야하는지도 사실 의문이긴 하다. 가족들과 다함께 워터파크나 바다에 놀러가면 훨씬 더 안전하지 않을까. 물론 물놀이를 하지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생각해서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줄어드는 아이들을 모집하기 위해 사립이니 공립이니 어린이집이니 모두 경쟁하는 이런 시국 속에서 보여주기식 행사식으로 치루어지는 것도 있지 않나, 하는 마음도 든다.


하여간 이 만화를 그리면서 PTSD가 올뻔했다. 이 직업을 몇년 몇십년을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모든 유치원선생님들의 노고에 존경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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