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광활한 초원에서 사파리!
행복했던 탄자니아에서의 여행이 끝나고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케냐의 국경을 넘었다.
케냐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세렝게티 초원에서 야생동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농장> 광팬이었던 나에게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며 야생동물을 보는 건 꿈에 그리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케냐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파리 예약이었다. 세렝게티는 나 혼자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안전한 지프차를 타는 투어에 참여해야 했다(혼자 초원에 갔다가는 말 그대로 사자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탄자니아에서는 800달러에 육박하던 사파리투어 비용이 케냐에서는 300달러였다는 것이다. 예약할 때 보니 ’ 게임 드라이브‘에 참여할 거냐고 하기에 그게 아니라 사파리라고 했더니, 케냐에서는 사파리투어를 게임드라이브라고 부른단다. 드넓은 초원에서 운전기사끼리 무전기로 연락하며 동물이 있는 곳을 게임하듯 찾아가는 투어라서 게임드라이브라며.
게임드라이브라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투어를 예약한 날은 아침 일찍 지프차를 타고 출발했다. 지프차에 오르니 익숙한 한국말로 말을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한국에서 유학했다는 중국인 친구였는데 한국말이 유창해 우리는 곧 학교생활에 대한 수다를 떨 만큼 친해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부부와 요르단 출신 남매 한쌍, 그리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아르헨티나에서 온 아저씨와 함께 우리는 사파리투어를 떠났다.
우리는 아르헨티나 아저씨가 가져온 스피커로 각자 나라의 노래를 들으며 마사이마라까지 달렸다. 나는 뉴진스의 노래들을 틀었고, 그다음부터 차례대로 이탈리아와 요르단, 중국, 아르헨티나의 음악을 들었다. 의외로 제일 좋았던 음악은? 요르단 음악.
언젠가는 요르단에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사이마라에 도착하자마자 텐트에 짐을 내려놓고 동물들을 보러 나갔다. 초원을 달리며 가장 처음 본 동물은 가젤! 영화 <주토피아>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 슈퍼스타 가젤이었다. 주토피아에서는 치명적인 표정으로 춤을 추던 슈퍼스타였는데, 실제로 본 가젤은 너무도 작고 마르고 겁이 많아 도대체 슈퍼스타 가젤은 누가 탄생시켰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몸집은 얼마나 작고 또 놀라기는 얼마나 잘 놀라는지, 사람들이 지프차 안에서 움직이면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랑스러운 동물이었다.
노을 지는 초원을 달리며 내가 정말 사파리에 왔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프차는 뚜껑이 열리는 지프차라 일어나면 머리를 밖에 내놓고 바람을 한껏 맞으면서 달릴 수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초원을 달리다 보니 마치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작년 이맘때에 이걸 꿈꾸며 퇴사를 했었지.
꿈꾸던 것들을 이루며 살아볼 수 있다니 이건 얼마나 감사한 삶인가.
초원을 달리며 기린, 코끼리, 사냥하는 사자 등등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봤다는 것 다음으로 좋았던 점은 정말 하루종일, 8시간을 넘게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초원을 달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드넓은 초원을 달려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난생처음 기지개를 켜면 그런 기분이었을까. 아기처럼, 아주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적응하느라 찌뿌둥했던 온몸이 펴지는 그런 기분을 나는 느꼈다. 기억 속에 숨어있던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중 한바탕 울만한 자리의 한 대목도 떠올랐다. 요동 벌판에서 드넓은 세계에 나온 느낌을 표현한 한마디.
-한바탕 울만한 자리로구나!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책상 위에서 그 작품을 달달 읽으며 그 기분을 가늠해 보았던 순간이 겹쳐졌다.
정말 아프리카에 안 왔으면 어쩔뻔했나.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로 나는 세상을 처음 맞이한 어린아이처럼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