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히치하이킹을 해보셨나요?
잔지바르 키짐카지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호스텔에서 사귄 친구 릴리는 정말이지 MBTI가 ENFP임을 넘어 EEEE, 그러니까 외향성으로 무장이 된 듯한 친구였다. 뉴욕출신이며 2년 내내 여행 중이라던 이 친구는 탄자니아 언어인 스와힐리어도 유창했는데, 물어보니 오기 3달 전 혼자 핸드폰으로 공부했다며 12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유창한 언어와 막강한 사회성으로 무장해 현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와락 하며 크게 웃는 릴리. 언제나 외향적인 친구들에게 이유 모르게 간택당하는 나는 여지없이 릴리에게 간택당했다.
릴리는 내게 함께 바다에 가자고 했다. 음텐데 비치라는, 잔지바르 내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바다가 있다며. 하지만 음텐데비치는 너무 멀었고 릴리와 나는 모두 장기여행자였기에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음텐데 비치까지 택시 타면 35000원이었고, 각자 보다 보다(스쿠터 택시)를 왕복으로 부르면 각자 만원씩이었다. 두 옵션 모두 너무 비쌌다.
생각 끝에 우리는 보다 보다 스쿠터를 딱 1대만 불러서 편도로 5천 원만 내고 음텐데 비치에 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건 어쩌고? 모르겠고 일단은 가보자.
기가 막히게 대책이 없었지만 모름지기 친구가 생기면 무모한 짓들을 벌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책 없이 용감했다.
스쿠터 한대에 운전하는 기사, 릴리, 그리고 나 순서대로 탔다. 작은 스쿠터가 세명의 어른으로 꽉 찼다. 움직이기도 버거운 듯한 스쿠터가 용케도 출발해 30분을 달렸다. 기사는 뭘 믿고 그러는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렸다. 작은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모두가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손잡고 하늘나라에 놀러 갈 것만 같았다. 여기 온 이후로 위험하다는 짓은 다 골라서 한다는 생각에 엄마, 미안해를 속으로 외쳤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신이 날수 없었다.
스쿠터는 어느새 푸른 초원 한가운데 있는 도로로 진입했다. 뷰티풀, 뷰티풀을 외치는 릴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사방에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끝도 없는 푸르른 지평선이 단 하나의 방해물조차 없이 쭉 이어졌다.
그렇게 풀과 야자수들만 펼쳐진 광활한 초원을 달리며 생각했다. 바람이 가슴속까지 들어오는 듯 시원했다.
-지금 죽으면, 가장 행복할 때를 누리다 죽었다고 웃으면서 하늘로 갈 수 있겠구먼.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았는지 음텐데비치에 내려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음텐데 비치는 과연 아름다웠다.
투명한 바닷물과 고운 모래, 거대한 절벽. 첨벙첨벙 걷다 보니 '락레스토랑'그러니까 절벽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더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왔으니 맥주나 한잔 마시자하며 올라갔다. 그 바에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듯했는데, 릴리는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직원들과 어울려 놀다가 잠시 후 아프리칸 뮤직에 맞춰 춤을 췄다. 나도 장단을 맞춘다고 어정쩡하게 일어나 춤을 췄다.
이 텐션, 적응은 안 되지만 그래도 재밌어!
한참을 놀고 릴리와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지?
릴리와 나는 일단 걸어서 도로까지 나가보기로 했다. 뭔들 차가 다니겠지. 땡볕 아래에서 걸어가며 릴리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2년간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녔지만 잔지바르가 그중 가장 좋았다고 했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친절하다며. 여기 오기 전 자신에게 아프리카에 대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강도나 납치, 총 같은 걸 떠올리지만 자신은 UN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곳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위험한 지역도 있겠지만 정말 편견과는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에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내 영어실력에 대해 내가 자신 없어하자 모국어가 아니니 문법이나 단어를 조금씩 틀리는 건 아무 문제가 안된다며 기죽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다정한 릴리의 말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로로 나온 릴리는 지나가는 트럭을 세우자고 했다. 마침 거대한 트럭이 저 멀리에 보였다. 우리는 둘 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의 전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다리를 내놓.. 지는 않았고 환한 미소 날리기.
트럭은 우리 앞에 섰다. 총 세 명의 일꾼들이 트럭 운전석 안쪽에 앉아 있었고, 우리에게 방향을 묻더니 뒷칸에 태워줄 수 있다고 했다. 트럭이 너무 높아 낑낑대니 일꾼 한 명이 귀찮다는 듯 나와 릴리와 나를 각각 한 어깨씩에 번쩍 들어 태워주었다. 나 엄청 무거운데.. 통나무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하니 그런 건가. 이 생활근육의 힘이란!
트럭 뒷칸에 탄 우리는 뭐가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는지 모르게 웃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대는 트럭 덕분에 바람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야자수와 풀숲들과 파란 하늘이 슉슉 지나갔다. 입안에 모래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지만 너무 즐거워서 입을 도통 다물수가 없었다. 잠시 후 도로 중간에서 트럭은 우리를 내려주었고,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로 일꾼에게 짐짝처럼 들려내려 왔다. 입안에 모래가 한가득이라 침을 퉤퉤 뱉어야 했고 이에는 먼지가 껴있었다. 릴리와 나는 모래를 퉤퉤 뱉어내며 도로 위에서 깔깔대고 웃었다.
다음날은 잠에서 깨어보니 릴리도 나도 베드버그(빈대)에게 잔뜩 물려있었다. 옆옆 침대에는 스위스출신의 워크인(일을 해주며 숙식을 제공받는 것)을 하며 여행 중인 줄리아가 있었는데 역시나 팔을 벅벅 긁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물린 것을 보니 아마 숙소에 빈대천지인듯했다. 나와 릴리와 줄리아는 다 같이 벅벅 긁어대며 알로에와 약을 서로의 등과 다리에 발라주었다. 그 후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오래간만에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들을 만나 행복했고 그만큼 아쉬웠지만 다들 웃으며 떠났다. 여행자들은 만남도 헤어짐도 언제나 가볍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허전했다. 그래도 이 지구 위에서 살다 보면 언젠간 또 만나리.
그렇게 잔지바르 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는 섬을 떠나 킬리만자로 산을 보러 갈 시간.
섬에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내륙지방, 탄자니아 국경의 끝에 있는 킬리만자로.
나는 킬리만자로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제목은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서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