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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Sep 12. 2023

아프리카 버킷리스트 달성, 야생돌고래와 헤엄치다

돌고래를 바다로!

나는 탄자니아 내륙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잔지바르 섬의 최남단, 키짐카지로 떠나왔다.

키짐카지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돌고래를 보고 가려고.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변호사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돌고래에게 남모를 친밀감을 느낀다. 고등학생 때는 뜬금없이 자퇴하고 제주도에서 돌고래 조련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엄마가 기가 막혀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된 건 어릴 적 본 인터넷뉴스 때문이었다. 바다에 빠진 7살 어린이를 돌고래가 등에 업고 사람이 있는 해안가까지 데리고 와 구출해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출처도 근거도 없는 믿지 못할 인터넷뉴스였지만 돌고래의 아이큐는 80이 넘어 어린아이정도의 아이큐이며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지자 어린 내 마음속 돌고래에 대한 사랑과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그 후 나는 바다에 갈 때면 내가 위험에 빠져도 돌고래가 구하러 올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순진했지만 하여간 돌고래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아침 6시, 호스텔 친구들과 함께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해가 막 떠오르려던 참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며 뱃멀미에 시달렸지만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바랐다.

-돌고래들아, 내가 너네 좋아하는 거 알지? 제발 나와줘..

돌고래를 보러 나온 작은 조각배들이 10척은 되어 보였다. 돌고래가 많이 보이기로 유명한 해안이라 그런지 섬의 최남단임에도 여행을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참 배를 타고 가다가 선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돌고래다, 점프해!

그 소리를 듣자마자 배의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나는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뛰어들자마자 눈앞에 돌고래들이 보였다.

네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며 배를 뒤집고, 서로 스치듯 춤을 추기도 했다. 가슴이 벅차올라서 고글을 쓴 눈에 눈물이 맺히려고 했다. 아무리 오리발을 낀 발을 빠르게 앞뒤로 굴러도 돌고래들의 속도를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돌고래들의 뒤꽁무니를 아련하게 바라보는데 이게 웬걸, 갑자기 왼쪽에서 돌고래 한 마리가 나타났다. 왼손을 살짝만 뻗었으면 만져볼 수도 있었을 만큼 가까워 나도 모르게 즐거움에 소리를 질렀다. 돌고래도 즐거워 보였다면 순전히 내 생각이었을까.

배로 올라와 잠시 쉬다가 두 번째로 뛰어들었을 때에는 돌고래 대가족이 헤엄치는 장면을 보았다.

가족회의라도 하는 걸까, 어찌나 시끄러운지 몰랐다. 삐용, 끼용 하는 초음파 소리가 귀를 찔렀다. 모든 돌고래가 서로 자기 의견을 하나씩 덧붙이다가 싸움이라도 났는지 두 마리는 싸우듯이 서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래도 치열한 전투는 아닌 듯 다른 돌고래들은 개의치도 않고 헤엄쳐갔다.

자유롭게 수다 떨며 헤엄쳐가는 거대한 돌고래 무리를 보며 나는 경외심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돌고래의 초음파는 아주 멀리까지 퍼져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는 사방에 있는 유리벽을 부딪혀 돌아온 초음파소리에  이명에 시달리다 정신착란이 온다던 슬픈 뉴스가 왜 지금 떠올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한쌍의 돌고래는 어미와 아기인지, 암컷과 수컷인지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보다 조금 더 작았다. 둘은 나를 보며 커플댄스라도 추듯 동시에 배를 뒤집고 헤엄쳐가며 같은 춤을 추었다. 표정만 봐도 마치 웃고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져 나까지 행복했다. 그리고 두 돌고래는 다시 유유히 헤엄쳐 사라졌다.

아름다웠다. 살면서 본 것들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과연 돌고래들은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가 맞았다.

인간들이 이렇게나 자기들을 보겠다고 배를 끌고 몰려와 귀찮게 헤엄을 치며 따라오는데도 돌고래들은 조금의 공격성도 내보이지 않았다. 저희들끼리 즐겁고 평화롭게 헤엄을 쳤고, 이따금씩은 아무 적대감도 없이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와 헤엄을 치기도 했다. 무리를 이루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고 커플춤도 추고 즐거워하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오는 길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변호사가 고래 해방 시위에 참여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내가 무슨 대단한 동물 수호자는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돌고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면서 다시는 돌고래쇼를 보거나 돌고래가 갇힌 수족관에 돈 내고 가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했다. 돌고래에게 수조는 감옥이라던데, 오늘 이 드넓은 바다의 돌고래들을 보니 그게 어떤 뜻인지 깊게 다가왔다.

지구상의 모든 돌고래는 수조를 떠나 바다로 돌려보내졌으면 좋겠다. 돌고래를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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