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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Sep 12. 2023

아프리카 클럽에서는 마사이족도 춤춘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능귀해변에서의 아침.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눈을 떴는데 호스텔 여성전용 4인실에 나혼자밖에 없었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지난 밤의 일이 떠올랐다. 같은 방을 쓰는 여자애 하나가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두드리는 나를 보더니 파티가 있다며 클럽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밤10시에, 그것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클럽에 간다는게 어쩐지 두려워 고개를 저었다. 겁이 나는건 나뿐이었는지 각각 영국, 벨기에 그리고 스위스에서 온 친구들은 머리를 땋고 옷을 갈아입으며 분주하게 파티가 열리는 클럽에 갈 준비를 했다. 모두 각자가 혼자 여행하는 친구들이었는데도 이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처럼 친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잔지바르를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기질은 대체로 비슷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 인생은 한번 뿐 즐기자!'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자유로운 성격의 배낭여행자들.

잔지바르 여행자들 중에서도 나는 가장 겁많고 낯가리는 여행자였다. 그래도 빈 방에 혼자 남아있자니 약간은 소외된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갈걸 그랬나, 하며 새벽 1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나갔던 친구들은 새벽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지금까지 안들어온건지 모두가 방에 없었다. 내 안의 유교걸이 눈을 뜬건지 파티걸이 눈을 뜬건지, 걱정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놈의 지지배들, 그래도 아침까지는 집에 왔어야지! (..오늘밤엔 나도 놀러가야지)”

그러고나서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작은 섬에 가기 위해 서둘러 해변가로 나왔다.

통째로 들이키고 싶을만큼 시원하고 청량한 능귀 바다의 색

애초의 계획은 음넴바섬에 가는 길에 돌고래를 보는 것이었으나 그날따라 돌고래가 보이지 않았다. 미식거리는 배멀미를 참으며 도착한 음넴바 섬은 빌게이츠 소유라는 작은 섬.

음넴바 섬 앞에서는 생전 처음보는 청량한 바닷물의 색깔에 눈을 비볐다. 어쩌면 이렇게나 맑고 투명한 바닷물이 있는지. 곧장 뛰어들어 스노쿨링을 했는데 바깥에서 본 아름다움과 달리 안에는 가시를 내세운 새까만 성게들이 잔뜩 있었다. 발한번 헛디디면 성게가시에 사정없이 찔리겠다 싶어 얼른 다시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능귀 해변으로 돌아왔다.

해변을 거닐던 전통부족 마사이족과 함께.

능귀해변에 누워있자니 마사이족이 다가왔다.

이곳의 마사이족들은 하나같이 빨간 천을 망토처럼 두르고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짚고 걸어다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마사이족이라면 오래 걷기로 유명한 전통 부족이 아닌가. 검색해보지 않고도 나는 마사이족에 대해 알고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마사이족 신발을 본떠 만들었다던 운동화가 잠깐 유행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마사이족 운동화가 유행할 당시 홍보했던 바로는 마사이족은 하루 수십킬로미터를 걸어다니며, 그들의 신발은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아무리 걸어도 허리와 발이 안아프고 오래 걸을 수 있다고 했더랬다. 그게 생각나 마사이족들이 어떤 신발을 신고 있나 궁금해 살펴봤는데 마사이족들은 가죽으로 엮은 짚신같이 생긴 낡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마사이족들이 들고다니며 파는 슬리퍼들은 조금만 신어도 끈이 떨어질 것 같이 약해보였는데, 그 위에 조잡한 꽃장식같은것을 달아놓아 그 누구도 살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슬리퍼더미를 팔러 모래사장 이쪽끝부터 저쪽끝까지 종일 걸어다니는 마사이족들의 얇다란 종아리가 퍽 안쓰러워보였다.  

그러나 내게 다가온 마사이족들은 정말이지 질린다싶을만큼 끈질겼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대화를 많이 나누었지만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어디에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이고 누구랑 놀러왔고 며칠간 머무르며 숙소는 어디인지까지 듣고싶어 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 대화를 끝내면 또 다른 마사이족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댔다. 잠시도 혼자 있을 틈을 주지 않아 나중에는 영어를 아예 못하는 척 해야했다.

밤길을 나선 클럽원정대

그렇게 한 것도 없이 지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와 자던 중이었다. 같은 방 친구들이 다시 나를 깨웠다. 오늘밤도 클럽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기에 오케이를 외쳤다. 어젯밤의 소외감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프리카 클럽에 대한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아침까지 논 친구들이 무사히 살아돌아온 것을 보니(?) 나름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까지 생겼다. 벨기에에서 온 친구 사라는 그야말로 사교성의 인간화 그 자체였고, 케냐에서 봉사활동 중인 앨리스는 조용하고 친절한 친구였다. 사라와 앨리스는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아는 친구들이 있는데, 가이드업체에서 일하는 가이드들이란다. 밤길이 너무 캄캄해 위험하니 데려다줄 친구들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조금 지나니 껄렁거리는 남자 2명이 나타났다. 내가 믿을만한거냐고 속삭대며 묻자 사라는 며칠이나 이 친구들과 투어를 하고 놀았단다. 의심을 지우지 못한 나는 친구들을 뒤따르며 생각했다.

'호기심때문에 목숨을 거는구만. 나 오늘 살아돌아갈 수 있겠지?'

그런 나의 걱정과 염려와 공포감과 달리 사라와 앨리는 천연덕스러웠다. 애들 말에 따르면 특히나 이 능귀해변가는 정말 안전한 편이며 핸드폰이나 지갑 소매치기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클럽은 한국과 다를 바 없는 풍경.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은 전부 아프리칸 음악이었다. 레게와 EDM이 적절히 섞인 듯한 음악이 둥둥 울리고, 서양에서 온 관광객이 반절은 되어보였다. 내가 시킨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칵테일은 무지하게 강해서 몇모금 안마셨는데도 헤롱거렸다.(나중에 알고보니 탄자니아에서 칵테일에 공업용 에탄올을 쓰는 경우가 많아 관광객은 주의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다소 한산한 모습에 사라는 말했다.

"새벽1시가 지나면 그때부터가 진짜 재미있어."

벌써 밤11시였다. 나는 벌써부터 칵테일(어쩌면 공업용 에탄올일지 모를)과 잠기운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두운 밤길을 혼자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호기심에 잠깐 관찰하고 싶었던거지 1시간이 지나자 이제 귀도 아프고 졸리고 기가 빨렸다. 이럴줄 알았으면 친구들 머리에 카메라를 달아서 나는 숙소에 누워 실시간 중계를 보기만 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지극히 내향적인 인간다운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신난 친구들은 집에 갈 생각이 없어보였으니 하는 수 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눈을 꿈뻑거리며 앉아 관찰한 클럽 풍경중 눈에 띄었던 것은 현지인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딱히 없고 대부분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지인 여성들은 흔히들 입는 몸에 딱붙고 짧고 파인 클럽룩을 입었고 남자들은 과하게 큰 티셔츠에 농구바지, 금장신구를 하고있어 흡사 래퍼같은 옷차림이 많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클럽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시작되었다. 댄서들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조각같은 몸을 가진 댄서들은 무슨 컨셉인지 공사장 인부같은 옷을 입고는 춤을 췄다. 댄서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정말 달아올랐다. 이래서 새벽1시부터 재미있다고 했구나. 친구들과 함께 춤을 추며 놀다 고개를 돌렸는데 익숙한 차림의 남자가 춤을 추고 있다. 마사이족이었다. 현란한 차림과 번쩍거리는 조명, 헐벗은 댄서들 틈에서 빨간 천을 두른 마사이족의 존재는 정말이지 이질적이었다. 그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앞에서 춤을 추던 빨간 원피스 차림의 레게머리 여성에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 장면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박물관 마네킹이나 다큐멘터리 속 존재, 그러니까 인간적인 평범함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존재가 사람으로 변한걸 지켜보는 느낌. 아프리카 전통부족이라고 한데 묶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 밖의 어떤 존재라고 생각한 마사이족 사람도 실은 그냥 클럽에서 춤도 추고 여자도 꼬시는 평범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그 느낌이 생소했다. 한마디로, 사람은 그러니까 전부 다 그냥 사람인 거였다.

나는 한껏 취한 친구들과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수상했던 칵테일의 여파로 숙취로 시달리다가 부은 얼굴로 다시 배낭을 메고 또 길을 나섰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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