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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Sep 09. 2023

탄자니아 커피와 프레디머큐리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 세상에 태어나길 진짜 잘한 것 같아."

탄자니아의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던 아침, 나는 잔지바르 한 작은 카페에서 훌쩍이며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중얼거리면서.

이게 웬 청승이람?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있다. 정말 맛있다!

오늘도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허기를 느꼈다.

부스럭대며 일어나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가 아무 생각없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빵을 시켰다. 평소 아메리카노는 내게 '향기나고 잠이 잘깨는 쓴 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그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주문이었다.

잠시 후 레게머리의 직원이 가져다준 작은 찻잔에 담겨나온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시는 순간, 아메리카노는 다 거기서 거기라던 내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진하고 구수한 첫맛에 혀끝에는 산미가 약간 맴돌고, 향은 레드와인처럼 향긋했다. 따뜻한 원두커피 한잔이 고급 요리처럼 느껴졌다. 탄자니아산 원두를 사용한 탄자니아본토의 아메리카노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가며 정신없이 마시던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세상에 좋은 것이 이렇게 많았나,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딱 1년전 이맘 때가 생각났다. 힘들었던 직장생활로부터 퇴사를 고민하며 삶이 나를 괴롭힌다고,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매일매일을 죽고싶다고 울며 잠들었던 그때로부터 1년후의 나는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한 카페에서 탄자니아산 커피를 마시며 인생이란걸 살아볼 수 있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사실에 나는 눈물이 고였다.

엄마, 날 낳아줘서 고마워. 나 태어나길 진짜 잘한 것 같아. 혼자 중얼거리고 보니 유치원생 이후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생땐 어버이날마다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편지를 썼는데. 나는 아마도 지금 유치원생시절 이후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있는가보다.

이렇게나 맛있는 아프리카 본토커피를 안마셔봤으면 어쩔뻔했지? 나,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는 오늘은 뭘할까 골똘히 생각하다 걸어서 5분거리인 프레디머큐리의 생가이자 박물관을 찾아갔다. 이 작은 마을 스톤타운에서 프레디머큐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나도 도착해서 지도를 뒤적거리다가 처음 안 사실. 그래도 퀸의 음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영화<보헤미안랩소디>로 프레디머큐리의 생애를 대략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동아프리카의 마을 한구석에서 태어난지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프레디머큐리의 생가이자 박물관은 10분만에 다 둘러볼 수 있을만큼 아주 작았다. 프레디머큐리가 실제 쳤던 낡은 피아노 앞에도 앉아보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박물관 벽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전설적인 명언이 적혀있었다.

<나는 스타가 아니라, 전설이 될 것이다.>

사람은 말하는대로 된다더니.. 노래하는 꿈을 이뤄서 참 좋겠다, 생각하면서 나도 한번 말해봤다.

<나는 스타도 전설도 아니고 ..작가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말하는 대로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 야채 종류까지도!

박물관을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좁디좁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속에서 약간의 두려움과 경계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어떻게든 기념품을 팔아보려는 상인들과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하는 말들이 들려와 더 정신없었다. 맘보,잠보 하는 잔지바르의 인삿말과 함께 니하오, 곤니찌와하는 인사소리가 들려오며 뒤섞인다. 그 와중에도 아시아인은 왜 다들 중국 아니면 일본인일거라고 생각하는 거냐며 나는 일부러 한국말로 안녕, 안녕하며 답하며 지나갔다. 막상 인사에 답하니 활짝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 언제나 두려움은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거지. 좀 걷다보니 그저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평범한 골목길일 뿐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시장이 나왔다. 길거리음식을 팔고, 슬리퍼를 쌓아두고 팔고, 야채가게에선 야채를 잔뜩 쌓아둔 평범한 시장의 모습. 야채가게를 지날땐 잔지바르 사람들은 어떤 야채을 먹고 살까 궁금했는데 한국과 별 다를바도 없었다. 양파, 생강, 배추, 시금치, 피망..

왜 나는 야채마저 무언가 다를거라 생각한걸까?


시장을 지나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생각했다. 사람사는 곳은 정말이지 어딜가나 다 비슷하다고. 전혀 다른 세상일 것만 같았던 동아프리카 섬에서도 사람들은 태어나고 인사하고 야채를 팔고 가수가 되는 꿈을 꾼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과 나라들은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 다른 세계라 그어놓았던 경계선이 박박 지워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 세상이 넓어지는 것만 같아 숨통이 트인다. 세계여행을 시작한 후로 자꾸만 숨통이 트인다고, 이제야 숨을 쉴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들은 단지 일상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의 좁디좁았던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며 깨지는 것이 속이 후련했던 것이었다.

역시나 산다는건 재밌는 일이다. 아, 정말이지 태어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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