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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Jul 25. 2022

공립유치원교사 의원면직 이야기-에필로그

나를 위한 길을 찾아서!

나는 공립유치원교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4년간 공부했고, 1년간 치열하게 공부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임용시험까지 붙은 후 3년 반동안 유아교사로 일했다.  도합 8년 정도를  유아교육에 쏟아부은 셈이고 20대 청춘의 대부분을 한 분야를 공부하는데 매진했다. 더군다나 이 험한 세상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호봉이 오르고 정년이 보장되는 교육공무원이라는 안정된 길을 포기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유치원교사를 하면서 계속 꾹꾹 눌러왔던 상처들이 터졌고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음이 터지거나 두통이 심해졌고 숨쉬기가 벅차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삶은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두가지였다.

버텨내느냐, 그만두느냐.


처음엔 당연히 이제껏 해오던대로, 참고 버텨내려고 했다. 이제까지의 노력과 기회비용과 그만뒀을때의 막막한 미래를 생각하면 버텨야했다.

그렇게 몇달이 더 지나자,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죽는게 나은 삶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죽지? 남들에게 민폐끼치며 죽기는 싫은데. 내가 죽으면 우리 고양이는 누가 보살펴주지? 그리고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들은 정말이지 슬퍼서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어느 날 밤은 그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눈물이 터졌다. 나는 한참을 혼자 오열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그렇다고 이렇게 죽는건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달려온 일 밖엔 없어.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해.


그런 밤이 며칠 더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도, 일을 그만두는걸 택했다.

건강해지고 싶었다. 다시 힘을 찾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로부터 나를 빼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힘들지만 그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버텨왔다. 하지만  일이 나를 죽일 셈인데 언제까지 기회비용과 책임감따위로  일을 붙들고 있을수 없었다.


그만둔다고 하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가족과 친구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만류했다. 나는 다시 흔들렸지만 나를 다잡아주었던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남들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네 인생이야. 니가 더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거기까지인거야. 많이 노력했잖아. 세상은 넓고 너는 아직 젊어. 선택하고 책임지면 돼. 너의 인생은 온전히 너의 것이야.

-그만큼 버텼으면 됐어. 너는 네 몫을 다 했어.

-네가 행복한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 우리 인생긴데 괴로운 일 붙잡고 있을 필요 없어.


그리고 나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쓰던 손이 조금은 떨렸지만 , 그 종이 두장을 내고 돌아오며 어찌나 후련했는지. 인생을 살면서 그런 기쁨과 해방감은 정말이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약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었다.

퇴사가 만병통치약이라더니 진짜네.

막상 그만두고 나니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사라졌다.

그래, 어쩔거야.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데 말이야. 세상에 나하나 먹고 살자리 없겠어?


내 인생의 주인은 나고, 나는 더이상은 내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것들을 참고있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참고 버텨내는 괴로운 삶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삶,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아침과 밤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따금씩 삶이 이렇게나 소중하고 기쁜 것인지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심지어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살아있다는것에 너무 감사해서 진시황제가 왜 장수하겠다고 수은까지 마셨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네,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다했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그냥 나인데 왜 그렇게까지 유치원교사라는 직업에 매달렸나 싶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들 덕분에 이렇게나 세상이 아름다운걸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아, 그야말로 한 세계를 깨고 인생 제2막이 열린 기분이다.

하고싶었던 그림그리기를 시작하면서 내 이야기들을 sns에 올렸고 생각보다 과분한 응원의 메세지들과 댓글들을 받았다. 이렇게 세상은 따뜻한 곳인지도 또 처음 알았다.

이제 내 삶을 살아봐야지.


유치원 안녕! 함께해서.. 그랬고 다신 보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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