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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Sep 02. 2022

스페셜살롱 이야기<8월의 크리스마스/500일의 썸머>②

떠오르는 계절의 순간, 떠오르는 여름의 순간. 계절 사이

떠오르는 계절의 순간, 떠오르는 여름의 순간

계절사이 Editor's Short essay, written by local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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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로컬 살롱은 대화 없이 진행된 우리들만의 여름밤 이야기였습니다.

계절과 사람 사이 피어오르는 마음들로 그린 두 영화처럼 문득 떠오르는 계절의 순간, 혹은 영화를 보며 떠오른 우리의 필름 같은 계절 순간을 기록한 이야기를 함께 전합니다.

우리의 순간과 우리의 이야기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필름 같은 계절 순간에 맞닿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에 문득 떠오르는 계절의 순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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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사이 written by 궁화


툭하면 쓰러지는 여름, 내색도 못하는 나는 매년 내가 태어난 여름이 지독히 싫었다.

머리가 뜨끈히 익어가면 세상이 돌고 구역질이 나는 여름보다야 무조건 살만한 가을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렇게 역정 내는 여름이 매번 기억에 남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사투를 벌인 낮이 지나면 찾아오는 밤의 순간이 식혀주는 열기가 생각보다 컸나 보다.


그리고 올해 여름, 드디어 미쳤는지 자고로 여름은 땀 한 바가지 흘려야 기억에 남는다며 고통을 자처한 나였다. 결과적으로는 하루에 한 곳도 제대로 못 돌아다니고 이틀씩 앓았지만 그 빈도라도 늘렸던 여름이었다.


어쩌면 한여름밤의 꿈처럼 반짝거리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라라 랜드>처럼 일상이 뮤지컬 같고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처럼 꿈같은 사랑을 하는 그런 여름날.


그래서 우리끼리의 스페셜한 여름밤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물 같은 추억을 담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운명을 생각해보는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며 생각과는 다르게 이성적인 여름 살롱을 진행했지만 분위기만큼은 감성적인 밤이었다.

이후 장마가 시작되었고 올 해의 반을 지났을 뿐이지만 어쩌면 계절 중 유독 여름을, 그리고 더위를 가장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름의 맛을 알아버렸다.



✍계절➖사이 written by Nyeong


여름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500일의 썸머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여름을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계절을 곱씹어봐도 떠오르는 건 온갖 것들을 껴입고도 오들오들 떨며 빨간 국물을 찾아 헤매던 코 끝 시린 여행의 기억뿐이다. 급하게 티켓을 끊고, 숙소만 달랑 예약해 도착한 프라하의 첫끼도 한식당의 육개장이었다.


굳이 겨울과 여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여름을 꼽을 텐데 의도치 않게 여행은 주로 겨울에 다녀왔다. 귀가 깨질 것 같이 아리던 제주의 해안 둘레길, 하얀 눈밭에 달랑 서있는 나무 한그루 보고 떠난 삿포로, 폭설에 둘러보지도 못하고 작은 가게에 옹기종기 붙어 앉아 마시지도 못하는 뱅쇼를 홀짝이던 할슈타트 모두 겨울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찬기는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지만, 목적지를 잊은 혹은 잃은 겨울의 순간들을 잘도 헤매고 다니며 도리어 추위보다 더 웅크리게 했던 몸과 마음의 기억은 말끔히 지웠다.


지금의 내가 잔뜩 움츠러든 작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건

내게 주어진 찰나의 순간들을 잘도, 잘도, 잘도 헤매고 다니지 못한 탓일까.



✍계절➖사이 written by Cholog


계절 순간을 곱씹으려 메모장을 뒤적였다. 봄에는 봄으로, 여름에는 여름으로, 가을에는 가을로, 겨울에는 겨울로 곳곳에 숨어있던 계절의 기억을 꺼내다 보니 '아 그래, 나 가을 좋아 맨이었지.' 하며 아차차! 가을!


벚꽃으로 온 거리가 뒤덮여 설렘 수치 가득 올라가는 봄도, 뜨겁고 습한 날씨만큼 지독하지만 지나고 보니 여름이었던 날들도, 가장 사랑하는 12월이 있는 겨울도 아닌 가을.

'맞아 나 가을 정말 좋아했지, 그래'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코끝이 시려지고 얇은 옷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올 때면 옷장 깊숙이 넣어둔 긴 잠옷을 꺼내고.

선선해진 날씨만큼 잦아진 밤 산책은 길어지고 길어지고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고.

아침이 오면 꼭 맛있는 곳을 찾아가 고소한 아이스라테를 마시고.

저녁에는 5 SOS High를 들으며 캔맥을 꿈꾸고.

실패 없는 낭만이 쏟아지는 계절.


누군가와 나지막하고 고즈넉한 대화를 나누고 싶던 때도,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걷고 싶던 때도,

벤치에 털썩 앉아 마냥 햇볕을 쬐고 싶던 때도,

잔디밭 위에 돗자리 펴고 엎드려 책을 읽고 싶던 때도,

자전거를 타고 훌쩍 떠나고 싶던 때도. 그 순간은 모두 가을에 있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한, 넘치는 햇살에 청명한 하늘.

코끝이 시려지는 찬바람과 무겁지 않은 옷가지들.

쉽게 상하지 않지만 쉽게 사라져 버리는. 지금뿐이기에 당장 누려야만 하는.

짧아서 더 사랑하게 되는 계절. 기다려 마지않는 가을이 곧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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