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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Mar 20. 2021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용설명서


며늘아기의 작디작은 마음으로
상상의 날개를 달고
시아버님의 마음속에 들어가
써 보는 글입니다.  찡긋!


-

결혼이 늦어진 큰 아들이 색시감을 데려 온단다.
아홉 살이나 어리다는데,
대체 어떤 아이길래 우리 아들이 푹 빠져 있는지
한번 만나봐야겠다.


아내와 함께 아들의 색시감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아내는 몇 마디 하지도 않고
아들의 색시감이 닳아 없어지길 바라는지
두 시간 내내 쳐다보기만 하더라.
어쩔 수 없이 내가 면접관이 되어 버렸다.


훌쩍 커버린 큰 아들의 와이셔츠 다림질은
내 담당이었는데,
며늘이 된다는 아이는
다림질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직장생활이 너무 고된 것 같던데,
가정생활은 잘해나갈 수 있을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수십 년 전 신입사원 면접을 보던 때 생각이 난다.
깡마른 여자아이가 대답을 어찌나 씩씩하게 하는지.
나도 모르게 면접관이 되어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사랑은 국경도 뛰어넘는다는데,
아홉 살 차이 정도는 거뜬하게 뛰어넘겠거니
결정은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한다.
아들 녀석이 좋다는데,
믿고 맡겨야지. 뭘.


며늘 아이가 드디어 우리 식구가 되었다.
해안지방에 터를 잡은 사돈댁에서
결혼식 당일에 가족들과 베풀고 나누라고
난생처음 보는 커다란 문어와
각종 산해 진미를 보내오셨다.
내가 새 딸을 얻어 감사해야 하는 처지인데,
음식까지 보내오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미국에서부터 건너온 내 형제들과 음식을 나누며,
오래간만에 두 어깨를 활짝 펼쳤다.


지난해 작은 며느리에 이어
올해는 큰 며느리를 얻었다.
이제 내 자식 같은 딸이 둘이나 된다.
우리 식구가 된 이상
이 딸들도 내가 지킨다.


큰 아들의 결혼 후 처음으로
두 아들의 내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아내가 즐겨보는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설거지 때문에 그렇게 싸움이 나더라.
그게 뭐 어렵다고.
우리 식구들이 모일 때 설거지만큼은
내 몫으로 챙기기로 했다.
네가 하네 내가 하네 손사래 치고
밀고 당길 것 없이
실력 좋은 내가 나서서 하기로 한다.  
먼저 하겠다고 양쪽에서 달려들던 며느리들도
“이건 실력가가 해야 돼!” 하는 단호한 내 말 한마디에
꼬리를 살살 내린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큰아들네가 멀리 울산으로 이사를 했다.
6개월짜리 첫아들을 며느리 혼자 돌본다는 걸
생각하니 안쓰럽고,
무엇보다 우리 손주 얼굴이 자꾸 떠올라 안 되겠다.
2주에 한 번씩 울산으로 내려가 사흘 정도 며늘과 함께
손주를 돌본다.
며늘 아이가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며늘 아이는 애 하나 보면서,
‘힘들어서 아주 그냥 똥을 싼다.’
그런데도 제 자식이라고
꾸역꾸역 키워내는 걸 보니 기특하다.


아들네에 올 때마다 대청소를 싹 해주고 온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그렇지
구석구석 먼지 하며 땟국물을 줄줄 흘리며 산다.
내가 이렇게라도 한 번씩 와서 치워줘야지,
이 녀석들 안쓰러워서 못 봐주겠다.


아들 네가 사돈댁에서 받아온 온갖 종류의 김치며
멸치볶음이며 각양각색의 반찬을
신줏단지 모시듯 김치냉장고에 묻어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반찬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돈댁은 손이 크셔서
애들이 다 먹지도 못하는걸 자꾸 해다 나르신다.  
며느리 앞에서 사돈댁 흉을 보는 건 아니지만,
좀 적게 받아오라는 말은
시시때때로 반찬처럼 얹어준다.
며늘 아이도 듣기가 싫은지 가끔은 뒤돌아서서
없는 주방일도 만들어서 하곤 한다.


내가 울산에 내려가는 날이면 며늘 아이는 냉장고에
소주 두병을 준비해 둔다.
내 마음 아는 건 며느리밖에 없지...
울산에 내려가면
며늘이 좋아하는 삼겹살은 꼭 한번 구워 먹는다.
애 키우면서 고기 궈 먹는 게 보통일이 아닐 테니
나라도 와서 구워 먹여야지.


손주 녀석들 기관에 보내고
둘째 날 점심은 며느리와 짬뽕 데이트를 한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짬뽕집에 가서
짬뽕 한 그릇, 짜장 한 그릇,
그리고 탕수육까지 시킨다.
이과두주를 한병 시켜서
내 잔에는 술을 채우고
며느리 잔에는 시원한 물을 채워준다.
그럴듯하게 짠! 하며 잔 사이로 격려를 보낸다.
며느리가 이런 내 마음을 알런지.
 

그나저나 아들을 둘이나 낳았는데도,
우리 며늘 아이는 부지깽이처럼 삐쩍 말라있다.
에미가 튼튼하게 버텨야 집안이 건강한 법인데,
오늘 전화가 오거든 밥을 좀 더 잘 먹어보라고
한마디 일러야겠다.
아니다.
그러지 말고 다음 주쯤 울산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잘 챙겨 먹는걸 내 눈으로 확인도 할 겸.
고기 좀 먹여야지, 우리 며늘 아이...


-

이상.
실화를 바탕으로
아버님의 마음 바다를 상상하며 써 내려간
며늘아기의 발칙한 글입니다.


우리 시아버님께는 비밀입니다.
(아버님 사랑해요~ 찡긋!! ㅋㅋ)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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