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라 Jul 11. 2021

아버님이 오신다.

아버님이 오신다



아버님이 오신다.

김치냉장고를 미리미리 정리하자.

오래된 김치 보시면 한 말씀하실 테니까.



아버님이 오신다.

냉장고에 불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비우자.

냉장고가 뒤죽박죽이었다가는 두 말씀하실 테니까.



아버님이 오신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리자.

안 그랬다간 우리 집 오셔서 일만 하실 테니까.



아버님이 오신다.

깨끗한 이불을 한채 꺼내놓자.

사계절 내내 더워하시니 얇은 이불로.



아버님이 오신다.

매실 엑기스를 부지런히 마셔놓자.

또 한 병을 들고 오실테니까.



아버님이 오신다.

장을 보러 가자.

뭐든지 다 잘 드시지만,

고기반찬을 대접하고 싶으니까.



아버님이 오신다.

소주 두병을 사다 놓자.

반주로 즐기셔야 하니까.



아버님이 오셨다.

버선발로 맞아 드리자.



아버님이 오셨다.

찌개 올리고 마주 앉아 점심을 먹자.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셨으니

얼마나 시장하실까.



아버님이 오셨다.

설거지 업무를 앗아 가신다.

매번 죄송하지만 매번 빼앗기고 만다.



아버님이 오셨다.

하원 하는 아이들 픽업장소에 10분 전부터 가자고 하신다.

할아버지의 그 마음 모르지 않아서 장단 맞춰 나선다.



아버님이 오셨다.

아이들 먹이는 것에 평소보다 더 열심을 내자.

아버님의 유일한 관심사이니 마음을 맞춰 드리자.



아버님이 오셨다.

온 집안에 기분 좋은 활기가 돈다.



아버님이 오셨다.

출근한 사이 집안 청소를 해 주신다.



아버님이 오셨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신다.



아버님이 오셨다.

작은 아이 밥 먹이는 일을 도와주신다.



아버님이 오셨다.

식물에 통 관심이 없는 며느리를 대신해

화단정리를 말끔히 하신다.



아버님이 오셨다.

일은 주로 아버님이 하시는데,

저녁마다 내 발바닥이 아프다.

저녁마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다.



아버님이 오셨다.

그리고

오늘이면 가신다.

벌써부터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벌써부터

아쉬움이 마음을 채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아버님과 나 둘 중에 그 누구라도 먼저 천국에 간다면

아쉽고 그리울 일들과 그리워질 감정을 짧은 시처럼 옮겨보았다.

시라고 하기에도 산문이라고 하기에도 어설픈 글이지만,

아버님과 마주 앉아 찌개를 나눠먹지 못하는 그때가 오면

사무치게 그리울 일들임을 알기에..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