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과 사랑에 대하여...
나 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나 홀로 멋진 경치를 구경한다.
나 홀로 ‘핫한’ 공간을 찾는다.
나 홀로 재미있는 영화를 관람한다.
나 홀로 멋진 사람들을 만난다.
이럴 때,
이전에는 항상 남편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시는 류의 것이라면
자연스레 엄마 아빠가 먼저 떠올랐고...
지금은 ‘좋은 것’을 가족 없이 누리고 있을 때
남편과 아이들이 연쇄 다발적으로 떠오른다.
‘꼭 같이 와야지. 꼭 알려줘야지.’ 하는 마음을 덧붙이며...
그리고 요즘,
아이들 없이 문구점이나 슈퍼에 가게 되면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후에 아이들을 만나 작은 선물을 건넬 때면,
좋아서 폴짝거리는 순도 100%의 순수한 모습이
너무너무 예쁘다.
내가 작은 마음을 건넬 때
절제 없이 이렇게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밝은 웃음과
귀여운 폴짝거림을 보고 싶어
나의 아이들에게는 자꾸만 좋은 것들을 주고 싶다.
어제 점심시간에 문구점에 잠시 들렀다.
계산대 옆에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지구 모양 젤리가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옆에는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축구공 모양의 젤리가 있었다.
신상인가 보다!
돌고래 소리를 내며 좋아할 아이들 모습이 곧장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 축구공 젤리 두 개를 담아왔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포르셰’ 한 대씩을 사준 것 마냥 기뻐했다.
순도 100%의 귀염둥이들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남편도 아빠가 된 후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퇴근길 집어 들어서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출장 다녀온 동료에게 받고 먹지 않고 챙겨 온 초콜릿,
회의 때 받은 작은 간식거리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호떡과 아이스크림...
이제 아이들은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 다녀오셨습니까?”
다음으로
“가방에 뭐 이쪄?” “아빠 선물 있어?”
하는 질문을 퍼부으며 아빠의 손과 가방을 수색한다.
(간식마저... 이렇게 학습의 효과는 놀랍다!ㅎㅎ)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사랑을 표현해보려고 하는 마음...
이게 다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나보다 더, 혹은 나만큼이나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자연 발생적인 사랑을
경험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색깔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없으리라.
기억을 되짚어보면,
나도 늘 아빠의 퇴근을 기다렸었다.
아빠의 손에는 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아빠의 겉옷 주머니는 언제나 어색할 만큼 커다란 것이었고, 그 주머니 속에는 늘 아빠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미취학 시절 아빠의 퇴근 선물 중 최고의 것은,
지금도 너무 선명하게 생각나는 것인데...
‘깐돌이바’ 라는 아이스크림이었다.
팥과 미숫가루를 섞어 놓은 듯한 맛인데
지금 상점에서 파는 것과는 모양도 맛도 조금은 다르다.
내가 여섯 살이 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경북 의성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시라고 해야 할지 마을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병원도 교회도 큼직하게 있었으니 도시라고 하는 게 좋겠다.
우리 가족은 같은 교회의 장로님 댁과 안마당을 함께 쓰며 방 한 칸 부엌한칸 짜리의 별채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아주 작은 별채였지만, 그곳은 우리 자매에겐 최고의 놀이터였고, 따뜻한 둥지였다.
작은 집에 사는 우리였지만,
사랑이 많아서 늘 따뜻한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빠는 퇴근길 주머니를 뚱뚱하게 불려서 언니와 나에게 간식거리들을 건네주곤 하셨다.
그리고 자주 등장하는 선물 중 하나는 ‘깐돌이바’.
날이 더울 때면 해가 떨어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안마당에 나가 아빠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올 깐돌이바를 기다렸다.
팬티 바람에 커다란 아빠 슬리퍼를 신고 골목 아래에서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집에 딸린 큰 계단을 펄쩍 뛰어내려 달려갔다.
두 번에 한 번은 아빠가 아닌, 주인집의 큰 오빠들이었다.
(기억하건대, 큰 오빠들은 이미 대학생쯤 되었던 것 같다.)
아빠가 아니라고 실망하던 내 모습을 귀여워하던 큰 오빠들은 나를 달래며 한참을 놀아주다가 본채로 들어가곤 했다.
한참을 목을 빼고 기다린 뒤어야
‘끼익~’하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빠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빠를 꼭 껴안으면
아빠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퇴근길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아빠 주머니가 볼록한지 확인을 하며 아빠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섰다.
젊은 날의 우리 아빠도
우리 자매가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반짝이는 사랑으로 바라보셨으리라.
부모가 되고 나니
내 부모의 깊은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값을 매기지 않는 사랑을 알아간다.
좋은 게 있으면,
나의 아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아이들이 기뻐할 얼굴을 떠올리면
가볍게 양보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작은 아이들 덕분에
부모가 되어가고,
바래지 않는 색깔의 사랑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