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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Aug 26. 2024

Lost ark

Lost ark

  나는 마침내 아주 오랫동안 했던 게임을 접기로 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방구석에 있던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친구이자 행복이었지만 이제는 현실 속 나를 가로막는 벽처럼 느껴지기에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땐, 우울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아름다운 스토리와 노래에 반해 게임을 하며 처음으로 울고 웃었다. 자기 전에는 항상 스토리가 요약된 유튜브를 켜놓으며 잠에 들었다. 가장 재밌었던 때는 당연 분기마다 한 번씩 나오는 신규 레이드를 모르는 사람들과 몇십 시간씩 트라이하다가 깼을 때였다. 절대 깰 수 없을 것만 같은 좌절감과 절망을 느끼다가도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경험치가 이루어낸 그 짜릿한 성취감이 참 좋았다. 가끔 게임 내에 안 좋은 이슈로 민심이 흉흉할 때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다가도 게임 총괄디렉터가 수습하며 해줬던 말 한마디에 게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지며 나 또한 하루가 행복해지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끔씩 게임 내에 숙제가 빨리 끝나는 날에 아쉬움을 남긴 채 컴퓨터를 껐을 때 모니터에 비친 내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기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레스로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었다. 그 시기쯤에는 게임이 단순히 취미의 단계에서 일상에 가까워져 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업데이트를 확인하고 업데이트가 없는 날이면 실망감에 하루가 우울했고 또 주간 숙제를 하루 안에 다 끝내지 못하면 답답해하면서도 반대로 빨리 끝나게 되는 주에는 공허한 마음만 가득했다. 주에 번 골드를 허무하게 다 써버린 날에는 재산을 다 탕진한 도박꾼처럼 자괴감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3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게임을 하며 지났다.

물론 현실 속에서 발전이 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어느덧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최소한 게임을 하기 위해 일을 했고 감정을 밑바닥까지 끌고 가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안정감. 나는 이것을 유지하고 싶었다. 게임을 끄면 항상 이 부분을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 친구로부터 본인이 다니던 회사에 취직할 것을 권유받았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가 워낙 블랙기업이었고 게임할 시간이 없었는데, 그곳은 가끔 아버지와 함께 일이 생기면 도우러 갔던 곳이었어서 내부사정도 얼추 알고 있었고 졸업했던 중학교와 가까웠기에 꽤나 익숙했던 곳이었다. 그 외에도 안정적으로 퇴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메리트였다. 올해는 자격증을 계속 준비하면서 그곳에 취업하고자 했다. 2월에 기존 회사를 퇴사하고 이후부터는 주말에만 아르바이트하고 평일에는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게임을 했다. 가끔씩 두 가지 모두 잡기에 버거워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차마 놓을 수는 없었다. 게임을 놓는 순간 삶에 큰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지막 자격증을 취득을 위한 8월이 되었다. 제일 중요한 시험이었다. 막상 계획했던 달이 되자, 회피성향이 강했던 우울증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마지막 일정이 끝나면 다시 지옥 같던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나를 환상 속에 가둬두었다. 매 주말에는 영등포에 있는 학원에 가서 실기를 준비해야 해서 전날에는 일찍 잠들었어야 했는데 항상 그러지 못했다. 매 번 '이것만 더' '이것만 더하고' 하다 보면 동이 틀 때가 되었다. 비몽사몽으로 준비하며 학원에 갔다. 당연히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수강생 중에 제일 실력이 있다는 강사의 말에 항상 자만했고 수업의 반나절은 자는데 썼다. 시험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이때는 미쳐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오만했다. 이후 시험을 치렀을 땐, 완성은 했지만 미쳐 예상 못했던 곳에서 실수를 하며 실격했다. 당연한 결과임에도 부정하며 짜증만 냈다. 내 잘못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일단은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 가기로 했던 바다 근처 숙소로 갔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서해 바다의 노을은 이미 저물어 있었고 물이 빠진 갯벌은 자개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과 반대되는 현실 속 내가 너무 초라했다. 바닷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허한 바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세상에 혼자 남아버린 것 같았다. 소금기 머문 바닷바람은 여름의 습기를 머묾고 있어 눈물처럼 짰다. 울지 못했던 속울음이 마치 진짜가 되어 깊은 바다의 심해 끝으로 데려가버리는 듯 했다. 좁고 작은 공간이 필요했다. 힘겹게 터벅이며 숙소로 돌아갔다. 온몸에 뭍은 소금기를 씻어내고자 욕실로 들어가서 거울을 보았다. 건강했던 예전보다 근육이 많이 빠져 꽤나 볼품없어 보였다. 그러다 이번에 받은 생활비 대출도 생각이 나자, 현실이 두려워졌다. 1년 가까운 노력이 이렇게 한 순간에 끝나버리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한 동안 욕실에 걸터앉아 멍하니 생각을 비웠다. 새벽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게임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됐을 때도 애써 지금을 부정하려 해도 달리지는 건 없었다. 결국 현실의 나는 곧 서른을 앞둔 나이가 되었고 늦게나마 현실에서 미뤄뒀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할 일을 정리했다. 대체로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 해결할 수 있는 것들 뿐이었다. 그것들을 하기 전에 약 2주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간 게임에서 오랫동안 같이 했던 사람들과 1주일 간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정말 원 없이 게임하고 대화했다.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긴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우울하지 않고 평온했다. 정말 행복했고 나에게 있어 최고의 인생 게임이었다.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같은 순간이었다.

  로스트 아크는 게임 내에서 아크라는 보물을 사용하기 위한 마지막 키이다. 이 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 혹은 무언가의 희생이 이따른다. 나 또한 당장 눈 앞에 있는 이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나의 가장 큰 친구를 떠난다. 누군가에는 이 게임이 단순한 게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는 게임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기도 한다.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최소한 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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