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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Jan 01. 2024

사월글방 - 마음편지 5

내가 만일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요?

<새로운 이름 덕분에 ‘벚나무’>

“유대인들은 이름을 신처럼 여긴다. 그들은 신을 히브리어로 ’하쉠‘, 즉 ’그 이름‘이라고 부른다.” - 수련 (배철현, 21세기북스)

세상 만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이름’을 꽤 진지하게 대했습니다. 친구들 이름의 뜻이 궁금했고 청주, 대전, 보은 등 내가 살고 있던 곳 및 인근 지역명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한자의 생성원리를 배울 때는 상형문자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어권에서 태어났다면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어원’을 파고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은 해봅니다.

얼마 전 읽었던 『수련』이란 책에서 구글(창업자가 유대인)이 지주회사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꾼 연유를 설명하는 부분이 기억납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신처럼 여긴다는 거였습니다. 이름은 정의이기도 하지만 염원이기도 합니다. 부르는 것과 불리는 것은 마치 기도 같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뜻을 담은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에 대한 나름의 고찰이 맞닿아 책 속에 기억의 갈피를 끼워두었던 것입니다.

4월에 예정일을 받은 둘째의 태명이 ‘사월’이었습니다. 그러나 태명이 무색하게 둘째는 5월에 태어났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사월’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8개월 동안 그 이름을 입에 붙이고 살다보니 익숙해지다 못해 좋아졌는데 실제로 나는 4월생이었으니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과일 중에 4월에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던 딸기를 가장 좋아했고, 무엇보다 4월을 수놓는 벚나무를 애착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엔 도시마다 하천변에 벚나무가 즐비합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장관을 이루니 진해 군항제나 여의도 벚꽃축제 등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나는 외롭게 서 있는 왜소한 벚나무나, 산속에서 잠시 존재감을 드러나는 벚나무 무리에 눈길이 갑니다. 그저 아름답습니다. 꽃망울이 올라오고, 꽃이 활짝 펼쳐지고, 꽃잎이 흐드러지게 날리는 모습이 말입니다. 처음 벚나무를 좋아할 때는 그렇게 시각적으로 매료되었습니다.

꽃이 피는 계절에만 그들을 알아보던 나는 몇 년 전 이사한 동네에서 아파트 앞의 벚나무를 사계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연분홍이 전부가 아닌, 다양한 색을 가진 나무였습니다. 원래 그랬던 것을 이제야 발견했는데 관찰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심 놀라웠습니다. 1년 중 일주일만 주목 받고 또 오랜 시간 잊혔다가 다시 꽃을 피우는 벚나무는 퍽 단단해보였습니다. 지나친 관심에도 급격한 무관심에도 고요하기만 하다고 할까요.

내가 본, 내 가까이에 있는, 그 나무가 내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하루하루가 되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 벚나무가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의 시선을, 나의 시간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그가 하는 일이란 늘 거기에 서 있는 것 뿐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고추밭 한 가운데 서 있던 호두나무와 고등학교 교정에서 가장 크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이름을 몰라 내 마음대로 이름붙인) 황금나무가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어떤 나무인가?’라는 질문 덕분에 나무를 꿈꾸고,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그래서 아이 이름도 나무라고 짓고 싶었던 나무의 동경 한 가운데 서봅니다. 사월이란 이름을 갖고 벚나무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날들에 책이 일상이 된 최근까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윽한 벚나무 옆에 ‘사월’이라는 공간을 소망해봅니다. 사월에는 딱 하루만 문을 여는 그곳에서 나는 벚나무와 함께 하다가 어느새 벚나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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