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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Mar 21. 2024

사월글방 - 마음편지 10

당신의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그려 두었나요?

<남기지 않고 비우는 오후의 빛>

보통 ‘오후’라는 시간의 이미지는 낭만적으로 다가옵니다. 티타임을 즐기는 문화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는 짐작도 해봅니다. 하지만 나에게 오후는 하루가 끝날 것 같은 조바심에 허둥대는 느낌입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처럼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엄마가 되고 어린 아이들을 돌보게 되면서는 더욱더 촉박하고 빠르게 흐르는 오후가 원망스러운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시점으로 인생의 오후를 대치해보자면 어쩐지 아등바등한 내 모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50대 이후는 여유롭고 느긋하기를 기대한 게 아닌데도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죽음 앞의 ‘여한’에 대해 나눈 대화가 떠오릅니다. 딱히 어떤 목표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40대에) 죽으면 후회되는 게 많은 것 같다고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오후에 대한 구본형 작가의 질문을 마주하니 이런 마음이 듭니다. ‘죽을 때 여한이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인생이든 선택은 한 가지로 뻗어나갔으니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남기 마련이겠지만 조금 덜 해볼 수 있는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후회나 여한이라는 것은 남기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가닿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질문이 이어질수록 무언가에 천착해 꽤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질문들에 명쾌히 답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도리어 묻다 묻다 미궁에 빠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나이가 들어도,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가져도 ‘명백’이란 체에 걸러지는 것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가만히 다시, 이제 서서히 다가오는 내 인생의 오후를 바라봅니다. 막연히 무언가를 잇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피어납니다. 한 마디로 ‘전달자’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엇’은 너무 많아서 아직 정하지 못한 것도 같고, ‘어떻게’는 방법을 찾는 중이라 모르는 것 같다고 말끝을 흐리게 됩니다만.

나에게 무언가 남기를, 내가 어떤 이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전달’ 역시 꼭 내가 아니어도 될 테지요. 실패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엇 하나 명확히 아는 것이 없어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변화는 이전이라면 불안했을 불투명이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는 겁니다.

인생의 반환점에서도 이렇게나 첩첩산중, 안개 속에서 다만 바란다면. 무어라 정의할 수 없고, 그 정의조차 필요하지 않은 내 인생의 오후는 언제나 텅 비어있기를. 알게 모르게 무엇이든 모두 ‘전달’이 되었기를. 영영 질 것 같지 않았던 오전의 해를 뒤로 하고 반대로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는 표정만큼은 너그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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