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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Mar 23. 2020

메리 앤 셰퍼 작가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 애니 베로스 | 이덴슬리



작가님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어요!! 저는 이 이야기에 완전히 반해버렸답니다. 울고, 웃고, 감탄하면서 책을 읽고 나니 저절로 작가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받으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글을 씁니다. 작가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와 같은 책을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2019년 책을 알게 되었고 2020년이 되어서야 읽게 되었어요. 읽으면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라는 거였어요. 저도 편지라면 좀 썼다는 축에 속하거든요. 대충 가늠해보아도 800통 정도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물론 수취인이 한 명은 아니었답니다.) 

사춘기 때는 친구들에게, 대학 이후로는 친하게 지내다 입대한 친구들과 연인에게, 그리고 라디오에도 종종 사연을 써서 보내곤 했어요. 현재 제가 쓴 편지를 100통 정도는 볼 수 가 있는데, 바로 남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 가장 많은 편지를 썼네요. 어쩌면 그 편지가 저희 부부에게 중매였을 겁니다. (아마 어떤 남자와 결혼했더라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지만요.) 

제가 손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유하고 진심을 다하는 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줄리엣과 그 주변인들의 편지를 읽으며 충분히 공감하고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걸 겁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쓰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편지를 쓰는 자세까지 상상하게 되거든요. 


사설이 길어졌습니다만. 위와 같은 이유로『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저에게 특별했어요. 또 다른 특별한 이유는 현재 저도 두 개의 책모임을 열심히 하다 보니 책 표지의 ‘북클럽’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확대되어 보였던 거죠. 과연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가 호기심을 자아냈어요. 이름이 왜 이렇게 길까 싶었던 호기심이 풀렸던 순간, 한숨과 미소가 동시에 지어졌어요. 2차 대전 독일군의 점령으로 가난과 기아에 시달렸던 건지 섬 주민들의 이야기에서는 한숨이, 몇몇이 몰래 돼지구이 파티를 하고 통금에 집으로 돌아가다 독일군에 발각되었을 때 임기응변으로 북클럽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났던 거죠. 


북클럽이라고 둘러댄 엘리자베스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강인하고, 용감하고, 지혜로운 그녀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런 엘리자베스가 (건실한) 독일군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그녀라면 아마도 당연히 받아들였으리라 생각돼요. 킷을 낳아 키우는 엄마가 돼서도 굶주린 독일군의 일꾼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히게 된 그녀라면 말이죠. 수용소에서 만난 레미라는 엘리자베스의 친구가 그녀의 소식을 북클럽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편지에서는 그만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깔깔 웃게된 적도 많아요. 세상에 줄리엣은 천생 작가가 아닌가요? 그녀가 편지에 적은 괄호마다 어찌나 실소가 터지던지. 실제로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계속해서 하게 되었답니다. 사실상 화자였던 줄리엣의 쾌활하고 유머러스함이 전쟁 중의 이야기를 슬픔에 파묻히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준 거 같아요. 

그러고 보면 줄리엣은 엘리자베스와 다른 면에서 용기가 있었죠. 12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 자란 것도 기특한데 전쟁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책을 쓰고,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잖아요. 또 건지의 북클럽 회원인 도시에게 받은 편지로 시작해, 북클럽 회원들과 편지를 하게 되면서 전쟁 중 건지섬의 실상을 책으로 출간하기로 하는 것도 그래요. 돈 많고, 젠틀한 미국인 출판업자 마크의 청혼을 받고도 건지섬에 갔다는 것, 그건 틀림없이 용기에요. 그리고 그 용기는 점점 건지섬과 북클럽 회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지요. 


도시의 진중함은 또 어떤가요. 그런 친구라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안 속에 있게 되지 않을까요? 책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은 친구. 지금 저에게도 무척 필요한 친구입니다. (뭐 남편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원래 남편이라는 존재와 결혼생활이라는 건 ‘만족’이 있을 수 없겠죠?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줄리엣이 가장 많이 편지를 쓴 사람은 절친 소피의 친오빠인 시드니였죠. 줄리엣의 책을 출판한 편집자였던 그도 놀라운 인물이에요. 그렇게 다정하고, 듬직한 오빠가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니 줄리엣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네요.) 


작가님이 돌아가시고 10년 뒤, 2018년에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책을 덮자마자 영화를 찾아서 보았답니다. 과연 편지글인 이 책을 어떻게 영화화했을까 궁금했는데, 책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어요. 분명 2시간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각색이 필요했을 텐데, 나름대로 각색은 잘 되었다고 보지만 저에겐 책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어요. 서사의 깊이가 다르다는 핸디캡을 제거하고도 말이죠. 분명 그 매력의 대부분은 작가님의 필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이 책이 첫 작품이자 유작이라는 점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안타까웠어요. 조카이자 이 책을 세상에 나오도록 완성시킨 애니 베로스의 글을 읽어보니 작가님의 이야기는 늘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은 거 있죠. 그런데 이후 작품을 만날 수 없다니... 이 이야기를 닳도록 아끼는 수밖에요. 


이 책의 묘미는 단연 사람들을 책으로 연결해주고 있다는 것. 줄리엣은 도시에게 말했죠. ‘독서는 망령이 나는 것을 막아준다’고요. 도시는 줄리엣에게 말하죠. ‘가끔 찰스 램을 떠올릴 때면, 1775년에 태어난 사람이 저에게 당신과 크리스티안(엘리자베스의 애인)이라는 훌륭한 두 친구를 사귀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감탄합니다.’ 존 부커는 로마시대 작가 세네카에게 푹 빠져서 그의 책 한 권만 읽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몇 십 년 전부터 몇 천 년 전까지 오래 전에 살던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공감하는 또 다른 누군가과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책의 매력일 거예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려고요. 그리고 이 책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또 다른 책을 탐독하며, 줄리엣과 건지섬 북클럽 회원들처럼 좋은 인연들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책으로 기쁨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부디 영면하시길. 


2020년 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작가님 이야기에 푹 빠진 대한민국의 독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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