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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Oct 23. 2021

글쓰기의 첫 걸음, 편지 – 너와 나


내 삶의 편지들


늘 끄적거렸다. 어릴 적부터 일기를 쓰던 습관 때문인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오늘’이다. 만들고 그리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었고, 공이나 기구를 가지고 하는 운동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다 보니 내가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엔 말보다 글이 편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편지를 자주 썼다. 살면서 쓴 편지를 어림잡아보면 800통은 넘을 것 같다. 그렇게 쓴 편지들 덕분에 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잘’ 쓰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백지 앞에서 떨지 않는 것이 특기일 수 있다는 걸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됐다. 


어버이날 부모님께나,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께를 빼고 자발적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무렵. 반 친구들 몇몇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교실에서 매일 이야기를 나누고도 무슨 할 말이 더 있었을까 싶지만 말과 글은 결이 좀 달랐다. 글을 쓰면 날씨나 계절의 변화에 따른 기분, 사물이나 풍경을 보고 떠오르는 상념과 같은 나의 내면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친분은 편지로, 편지는 신뢰로, 신뢰는 우정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보니 학창시절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는 그에게 진솔한 편지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다수의 친구들이 연예인에게 팬레터를 보낼 때 나는 좋아했던 교생 선생님에게 한동안 편지를 보냈다. 한 번에 서너 통씩 밀봉해 두툼해진 편지 봉투를 우체통에 넣으면 ‘툭’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설렘으로 다시 내 마음에 떨어졌다. 스무 통 가까이 보내고 두 통의 답장을 받았다. 두 번의 계절을 보내고 편지쓰기를 그만뒀다. 내 이야기가 철없는 고등학생의 푸념이었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키 성장은 멈췄지만 내면이 조금 더 자랐다는 걸 스스로 알아챘기 때문이었을지도. 


대학 시절 내 편지의 수취인은 주로 군인. 누구보다 편지를 제일 갈망하는 이들이었다. 답장은 1/10 정도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편지를 쓰는 목적은 그저 쓰기 위함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선후배, 동기들이 고마워했다. 몇몇 친구에겐 제대할 때까지 편지를 보내니까 내무반에서 진짜 여자 친구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딱 한 번 그 오해가 현실이 됐다. 그리고 그는 남편이 됐다. 



편지 책 


책도 편지 형식이라면 일단 호감이 간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만났을 때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전체가 편지글인 이 소설은 반전을 주는 형식도 편지만이 가지는 느낌을 그대로 살려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책모임’ 이야기를 ‘편지’로 풀어냈다니! 내 삶에 밀도 높은 두 가지 키워드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릴리에게, 할아버지가』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처럼 손자나 자식에게 지혜와 덕담을 나누어주는 책도 좋았다. 저자가 깊은 통찰력을 소유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본인들의 후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내용이기 때문에 주변에 자신 있게 추천도 했다. 


아끼는 그림책 중 하나인 『리디아의 정원』 역시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경제대공황 시기, 부모의 실직으로 잠시 외삼촌댁에 맡겨진 리디아가 고향의 할머니와 부모님께 편지로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지금껏 수십 번은 읽었지만 여전히 마지막에는 울먹이다 제대로 읽기 힘들어진다. 무표정하다 못해 험상궂은 표정의 외삼촌이 리디아를 배웅하며 꼭 안아주는 모습에서 나의 아버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간체가 아닌 책에서도 독자들은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과 같은 글로 편지를 받는다. 넓게 보면 책 자체가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책을 읽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리고 꼭 나도 답장을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아마 그래서 서평을 계속 쓰고 있는 게 아닐까. 



다시 쓰는 편지 


우체국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뉴스를 봤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힘든 수익구조 때문이란다. 카드명세서나 체납고지서 같은 걸 제외하면 우편함에 꽂히는 건 전단지 정도일 것이다. 다니는 길목에 우체통 위치를 자주 확인하곤 했던 나 역시 그의 안위가 궁금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 파피루스나 거북 등껍질의 기록물처럼 편지도 이미 역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 것만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사라지기야 할까 싶은 대책 없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아직은 내가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주 수요일을 아이들에게 편지 주는 날로 정했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별 내용 없이, 맥락 없이, 내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시시콜콜 날씨 얘기, 책 얘기를 하는 식이다. 아쉽게도 매주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얼마 전, 꽃이 만발한 편지지 묶음을 장만하고, 현관 앞에 두 딸 앞으로 각각의 편지통을 비치했다. 짧게라도 꾸준히 편지를 남겨보자는 각오로. 역시나 아이들에게서도 회신이 온 적은 없다. 편지로 하는 나의 노크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어떤 때는 설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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