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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달 april moon Dec 02. 2019

지구인이여, 우주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하여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원형  | 샘터사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외계인이 아니라도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런 행성이 있다면, 지구인도 그곳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 그것은 우주탐사의 커다란 원동력 중 하나다. 지구인의 다른 행성 찾기 프로젝트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가 가져올 지구 사망선고에 대한 염려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지구의 병세가 현재와 같은 추세로 악화된다면 새로운 터전을 찾기도 전에 지구인은 우주 미아가 될 것이다. 공상과학영화 같은 그 현실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구가 스스로 자전을 멈추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주 어딘가에서 다시 지구로 시선을 돌려 보자. 대체 지구가 어떻기에 우주까지 눈을 돌리려는지 말이다. 그 답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짧은 책 한 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지구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얼마나 못살게 굴고 있는지 쉽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먼저 보이지 않는 인연을 생각하고(1장), 사라져가는 것들을 돌아보며(2장) 우리의 사소한 행동과 무의식이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증명하고 있다. 


최근 한국인이 쌀밥과 김치보다 많이 먹는다는 커피의 생산지는 대개 케냐, 에티오피아 등  극심한 물 부족 국가이다. 반면 커피 한 잔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은 (커피의 재배, 볶고 말리는 과정, 포장 및 운송 과정까지) 약 140리터. 무려 2리터 페트병이 70개다. 우리가 식후에 한 잔씩 마시는 커피가 물 부족으로 타들어가는 아프리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무심코 꽂아 쓰는 콘센트 너머에는 화력, 원자력 등 발전소가 돌아가고 있다고 상기시켜준다. 전력을 만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를 야기하며 그것은 생물다양성 감소, 식량문제, 물 부족, 불평등, 빈곤과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하니. 방마다 하나씩 차지한 콘센트에 그런 사회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종자 기업들이 만드는 유전자조작 씨앗은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을 늘려주지만 종자 순환 금지모드로 설계되어 다음 농사를 지을 때는 또 다시 종자를 구매해야 하는 기업의 이윤논리에 종속시킨다. 그렇게 빼앗긴 종자주권은 결국 식량주권을 위협하는데, 양으로만 따지면 금보다 파프리카 씨앗이 훨씬 비싸다는 지적은 놀랍고 아프다. 



후반부는 불필요한 욕망을 살피고(3장), 일상에서 생태 감수성을 발견하여(4장)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으로 지구를 심폐소생 해보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우리가 ‘편리’라는 이름으로 누리는 대부분의 것은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에 치명적이다. 필요보다 많은 도로에서 죽어가는 야생동물들, 폭염과 에어컨의 악순환과 딜레마, 2년 만기로 망가지는 전자제품과 그 쓰레기들. 이것들을 환경과 연관시키려면 우리는 애써 깨달아야 한다. 편리함을 만들고 유통하는 권력자와 자본가들은 경제성장과 이윤이 지구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히말라야의 빙하쓰나미, 별 볼 일 없는 하늘, 사라지는 꿀벌들과 같은 직접적인 경고마저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가는 그런 경고가 재앙으로 번지기 전에 버리지 말고 고쳐 쓰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진공청소기 대신 비질을 하자고 권유한다. 과연 그것은 용기가 필요할 만큼 어려운 일일까? (어쩌면 ‘필요’보다 ‘과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소비에서도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를 어서 벗어 던져야 할 텐데.) 


얼마 전 우리나라는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다시 돌아온 폐기물로 국제적 망신을 샀다. 만약 그것이 정상적으로 수출되었다면 필리핀 어딘가에 쌓이거나 묻혔을 것이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그곳은 누군가의 안방이었을 수 있다. 


현재 버려진 플라스틱의 50%는 최근 15년 이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것들은 고래 뱃속을 가득 채우거나 해양 조류의 목을 조르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해산물을 먹을 때마다 미세플라스틱 함유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사계절 우리를 심란하게 만드는 미세먼지는 또 어떻고. 땅도, 바다도, 하늘도...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인이 누리는 편리가 양산한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지구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언제까지 받아줄까?” (p.119) 제목과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보이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까?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다 함께 지구의 멸망을 방관할 것인지, 다소 불편하더라도 더불어 삶의 기쁨을 누릴 것인지 하는 선택지를 받아들게 된다. 우주탐사에 도박을 걸 수 없을 바에야 선택은 자명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 ‘우리’에 인간 외에도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거시적 안목 장착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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