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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Dec 22. 2022

괜찮아, 안 괜찮아.

코로나 시국에 들어선 이후,

모든 이가 바라는 통일된 소망은 일신의 안녕이었다.


3년이란 긴 시간을 겪어오면서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에 걸려 약하게도, 심하게도 병을 겪었고, 안타깝게도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많은 이들도 생겨났다.

업무를 함께하는 동료들도, 친정 식구들도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어 병을 겪어냈다.

다행히 심하지 않게 병을 겪어 수월히 일상을 되찾았다.


이런 와중에,

나와 남편, 1호 아들, 2호 아들은 코로나에 걸린 주변인들과 직접, 간접적으로 숱하게 접촉하였음에도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아! 다행이다! 운이 좋았네!"


안도의 시간이 지나 의문의 시간이 왔다.


"우리는 왜 아무도 안 걸리지?"


"슈퍼면역자인가?"


넷 중 하나라도 알게 모르게 걸렸더라면 누군가는 걸렸을 텐데 아무도 걸리지 않는 걸 보면 우리 넷은 모두 슈퍼면역자인 건가?!


우린 우리가 선택받은 자들이라 생각하며 겁에서 벗어나 안심을 갖기로 했다.


그렇다고 방역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손을 씻고, 쓸데없는 외출은 삼가했다.

그렇게 덜 무서운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심정적 "슈퍼면역자"인 내가 이기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독감"이다.


4년 전, B형 독감에 걸려 한 달을 호되게 앓고 기력이 쪽 빠져 연말을 병치레로 보냈기에 독감은 나에게 산통 이후 제일 힘든 통증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런 심한 놈이! 코로나도 걸리지 않고 강한 면역력을 자랑하는 나를 또다시 덮친 것이다.


몸살,

두통,

기침,

가래...


총체적으로 덮쳐오는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겠어서 병원 조제약부터 약국약까지 수시로 때려 넣으며 호전을 바랐다.

정신 못 차리게 때려 넣은 약이 부른 부작용은 무서웠다.

도저히 차도가 없어 들른 병원에서 재 본 혈압이 189.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를 들고 응급실에 들러 재 본 혈압은 191.

응급실 침대에 누워 다시 재 본 혈압은 210.

혈압계에서 울리는 경고음이 섬뜩했다.

혈압 강하제를 주사하고도 잘 떨어지지 않는 혈압에 링거액이 추가로 투여되었다.


"왜 이러냐."


남편은 무덤덤한 듯 말을 내뱉었지만 속엔 걱정이 들은 듯 조용히 말을 흘렸다.

나 또한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속이 서늘하고 떨렸다.

느리게 떨어지는 링거액의 방울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후끈한 응급실의 공기가 갑갑했지만 e-book을 열어 글을 읽으며 신경을 전환했다.


"혈압 잴게요."


왼쪽 팔 상완이 압박됨을 느끼며 좋은 수치가 나오게 하기 위해 심리를 안정시켰다.


174.


이 정도 수치면 퇴원은 가능하다 했다.

입원을 해도 되지만 그리 권하진 않는다 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추출된 결과에는 이상이 없다 했다.

혈압이 높아진 이유가 다른 질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에 외래에서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고 약을 먹으며 치료를 하는 게 좋겠다 했다.

지금 당장은 응급한 불을 끈 상태이니 제대로 된 검사와 진단이 필요하다 했다.


원무과를 거쳐 약을 받아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야 편한 마음으로 숨이 쉬어졌다.

안심에 터진 입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긴장을 풀었다.


"땀이 나는 운동을 해야 해."


자기와 함께 스피닝을 해보자 하는 남편에게 집에 있는 사이클을 매일 열심히 타겠노라 다짐을 했다.




대비하지 못한 시련이 닥쳤을 때, 나는 의외로 차분해진다.

겁에 질려 서늘해진 가슴이 오히려 우왕좌왕하지 않게 가라앉혀주는지도 모른다.


대비한 시련에 제대로 방어해서 안전해졌을 때, 나는 꽤 가벼워진다.

한 껏 풀린 긴장에 느슨해지고 헐렁해진다.


묘하게 나의 마음가짐 또한 비슷한 결을 가진다.

긍정 가득한 마음가짐으로 무장을 하면 꼭 태클을 거는 일들이 생겨 마음을 다치게 만든다.

섣부른 기대를 자제하고 차가운 물처럼 그저 흐르게 두면 기대치 않았던 기분 좋은 일들이 생긴다.

하여 나는 되도록 긍정과 기대를 맘에 두려 하지 않는다.

제로에 가까운 공허(空虛)에 가까운 마음을 유지하려 한다.

공허(空虛)한 마음을 잘 유지하고 있으면, 작은 행운에도 충분히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고, 큰 고난에도 담담히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지된 마음은 내가 희()와 비()를 잘 견뎌낼 수 있게 힘을 준다.


괜찮아, 안 괜찮아.

뒤집을지 말지는 결국 내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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